누크의 사선(국어판)

[뉴욕의 가을] 안타까운 가슴의 병

열혈연구 2000. 10. 10. 16:59
뉴욕의 가을
- 안타까운 가슴의 병

@영화 고르는 법

한 주일이면 수백이 넘는, 스크린에 걸리고, 좁다란 TV화면, 비디오까지 더하면 선보이는 영화는 꽤나 많은 숫자가 될테다. 그 많은 빛그림 속에서 평등하게 주어진 24시간 안에 먹고 자고 일할 시간을 제외하면 썩 많지 않는 시간을 들여 볼 영화 한편을 고른다는 것은 적어도 최소한의 사고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6천원이라는 금전적 부담을 살짝 입히고 상대가 있다면 취향까지 배려해야 하는 식으로 조금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어떤 이들은 감독의 이름만 보고도 다짜고짜 극장으로 달려간다. 이런 유형은 보통 쉽게 영화자료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정보력을 가졌거나, 최대한 비율로 자신의 수입을 쪼개 가공된 정보를 사서 모을 확률이 높다. 그 감독이 모흐센 마흐말바프건 알렉스 프로야건 리들리 스콧이건 간에 각자의 취향으로 낙점한 감독들의 개별 작품이 금상첨화이건 점입가경이건 간에 이들은 매번, 늘어나는 필모그래피에 확인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보다 강한 정도로는 촬영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 제작자와 영화제 수상작을 골라보는 류가, 약한 정도로는 청춘남녀에서 남은 건 개성뿐인 특정배우에 집착하는 류가 있다.

이러한 선택의 경향은 관객 각자의 전형적인 행동성향을 나타낸다기보다 매번 개봉을 앞둔 영화에 따라 각각의 맞춤잣대이기 마련이다.

당신이 시간의 짬을 내어, 지불능력을 매표소에 확인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어떤가요, 감독 이름을 보지 않고서도 달려갈 만큼 멋지지 않습니까?


@ 그들은 언제나.
티벳으로 마음이 떠나 너무도 인도주의적인 종교인 리처드는 이제 정말 드물게 영화를 찍는 배우가 되었다. 기껏해야 이년에 한편 정도니, 젊은 날 로버트 레드포드와 견줄 만큼 멋진, 조금은 느끼한 미소와 은발은 특이한 배역이나 영화를 고르지 않음에도 보기가 힘들다. 반면, 위노나는 <가위손>이후로 숨겨놓은 자신의 금발을 보이지 않으면서, 흥행과 연기력의 극단을 오가고 있다. 올해만 해도 그녀의 모습을 두세 번 본듯하니 어찌 보면 다행이다.

뉴욕에 자리한 고급 레스토랑의 사장인 윌(리처드 기어)은 만난 지 보름만에 또다시 파트너를 바꾸는 중년의 바람둥이. 스물 두 번째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 샬롯(위노나 라이더)의 수줍은 미소에 그가 접근해 간다.

나이 먹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은 현실에서 불륜에도 못 미치는 게 대다수지만 영화에서는 여전히 당연하게 이를 반복 생산한다. 실제로 마이클과 캐서린은 영화계의 현실로 최근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한때 윌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과 샬롯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야 할만큼 약한 심장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 늙은 남자와 아주 젊은 여자'의 태연한 사랑에 맛 물려 상큼한 소스를 뿌린다. 남은 것은 재료와 양념을 섞어 놓을 감독의 몫.


@비밀스런 조리법
영화를 배우만 보고 달려간 경우 당연히 다른 면에서 무관심 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수록 재미는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아는 관객들은 감독이나 제작자 촬영감독이나 시나리오는 차후 확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오히려 나은 행동이다. 개봉 첫 주말의 영화에 관객이 많이 몰리는 것도 이와 별 다르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뉴욕의 가을> 두 배우의 환한 빛을 내세워, 관객에게 스미시의 영화가 아닌 이상 전반부에 등장해야할 감독의 크레딧 조차 보이지 않도록 배려를 해준다. 선입견은 금물이라며..

<마지막 황제>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미국과 중국계를 오가며 등장한 배우 조안 첸은 벌써 두 번째 영화를 내어놓은 감독이다.

뮤직비디오나 광고계 감독의 데뷔가 몇 년째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의 영화가 혹이나 이야기를 놓치면 의례 자신들의 전력이 영화를 덮고 있다는 식의 '호흡이 짧다' '의미 없이 현란한 화면'같은 혹평이 항상 따라다닌다. 하지만 배우출신 조안 첸감독의 <뉴욕의 가을>엔 아쉽게도 전력을 탓할 만큼 넘칠만한 연기가 없다.

적어도 매번 조용히 쓰러져 죽어 가는 어린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친구 집 할로윈 파티 중 지붕에 올라가 옛 여인과 섹스하고 내려오는 늙은 연인의 뻔뻔함이 단단한 심장 탓인지 몰라도 도대체 가슴에 와 닿질 않는다. 남자는 '사랑은 없어'를 극 중반까지 외치고 다니고 결과나 과정보단 '진실을 알고 싶어'만 반복하다가 여자는 맥없이 찾아온 남자의 품에 다시 안긴다.


@뉴욕의 겨울.
은행잎 가득하던 뉴욕에 하얀 눈이 쌓일 무렵 샬롯은 거부하던 심장 수술을 윌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램으로 허락한다.

<뉴욕의 가을>에서 가장 간절한 장면을 꼽으라면 윌이 심장 전문의를 찾기 위해 걸어대던 전화와 긁적이던 펜이 나오는 실내 씬(scene)을 들고싶다. 적어도 여기에선 연기의 반복과 과잉이 역할의 감정선에 맞아떨어진다.

그녀가 쓰러지는 세 가지 장소, 목욕탕 아이스링크 거실은 각각의 물리적 온도차만큼 영화 전반에 걸친 머나먼 감성의 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그래서 일년에서 이주일로 당겨진 그녀의 짧은 생명에 대한 아쉬움도 수선했다가 태연한 윌처럼 흐릿하다. 초반에 등장한 샬롯의 모자들만큼 멋진 관계는 끝내 조안 첸의 다음 작품으로 미뤄지고 만 것이다.

그래도, 씬별로 무난한 이유를 편안한 음악과 아름다운 색감에 둔다면 플롯별로 무던한 까닭은 이러한 장점들의 과잉과 짜 맞추기에 부족한 연출력을 탓하고 싶다. 샬롯보다 더 자라 아버지를 찾은 딸, 리사<베라 파미가>가 뜬금 없는 화해를 내놓지만 않았더라도 좀더 생생한 바람둥이의 개심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을..

그들의 만남 기껏 12,주 그가 사는 24층, 그의 나이 48세처럼 의미 없는 숫자 나열에서 의미를 찾을 만큼 관객들은 한가하지 않다.

<러브 스토리>의 백혈병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잊을 만큼 애절한 연인의 죽음은 아직 우리 앞에 나설 차례가 아니던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