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하나 그리고 둘] 문제적 삶

열혈연구 2000. 11. 16. 15:03
하나 그리고 둘
-문제적 삶

'的'이라는 글자는 홀로 설 수 없는 접미어다. 어떤 명사 뒤에 붙어 그를 형용사로 만들거나 불완전 명사를 명사로 바꾸거나, 둘 모두에게 '적'이 쓰이는 용도는 결국 방향을 나타냄이다.

양덕창의 2000년 작품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정의 성원들을 차분히 바라보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삶과 죽음을 세시간 가까이 풀어본다.

이곳에 나오는 인물들은 혼수상태에 빠진 장모, 컴퓨터 회사 사장인 아버지 지안, 어머니 민민, 고등학생 딸 팅팅, 초등학생 아들 양양 그리고 처남 부부가 중심을 이룬다. 결혼식은 처남의 옛 애인으로 난장판이 되고, 그날 밤 장모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퇴원 후 침대에 누워있는 장모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겉돌고 있음을 카메라는 조용히 따라간다.

영화에서 누구도 서로의 삶을 규정짓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는 것은 지안이 일본에서 만난 옛 애인에게 건넨 "애인 같은 딸, 친구 같은 아들"이란 말처럼 일렬 배열 아닌 평행적 구조를 보인다. 하지만 서로에게 무심할 만치 자유로운 온 가족보다 끊임없이 문제를 저지르면서도 집착과 확인을 반복하는 처남부부가 화해와 행복을 얻는데서 양덕창이 가진 이전의 차가운 시선은 조금씩 온기를 얻은 듯 하다.

그가 영화를 시작한 지도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이 되었다. '대만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란 명칭을 과시하듯 쉬지 않고 달려 온 그의 대만에 대한 관심이 이제 그의 영화소비가 지역에 한정지어질 것이 아님을 알아챈 듯하다.

그래도 <하나 그리고 둘>에는 양덕창의 장기(長技)가 그대로 담겨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보여준 어둠에서 확연한 인물과 배경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빛난다.

지안의 가족들은 저마다 무거움을 지니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투자와 거래를 하려는 지안에게는 이기에 앞선 파트너와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와 재회가 있고 밍밍에겐 어머니의 혼수상태가 당혹스럽다. 팅팅은 친구의 남자친구와 가까워지고 양양은 자신의 관심을 알아주지 않는 여학생이 있다.

이들 모두가 갖는 어두움은 양양이 갖고 있는 풍선처럼 외부의 충격에 터질 듯한 불안함인데, 이를 보여주는 양덕창의 그늘은 일품이다. 인물들이 윤곽을 살려내고 동작을 감추면서도 또렷한 실내의 명암들은 아직까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깊음을 소유한다. 이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

결국 가족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 해답은 인생이라는 과정의 단계였을 뿐. 공식과 법칙을 통한 결과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삶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더라도 계기를 통해 해결하는 이는 자신일 뿐이다.

지금 땅 위에 있는 우리도 그렇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