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엑스멘] 선택받은 돌연변이들의 경합

열혈연구 2000. 8. 21. 22:44
엑스 멘
-선택받은 돌연변이들의 경합


@ 만화, 치명적 유혹
오랜 시간에 걸친 수많은 등장 인물과 에피소드. 특유의 그림체와 대사들을 가슴에 품은 독자들은 돈줄을 쥔 제작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며, 줄을 세워 영화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킨 희대의 뜨거운 감자 <비천무>처럼,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헐리웃 영화가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러한 영화들은 현재 제작중인 <스파이더맨>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수퍼맨>까지 영화계 관심의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돌이켜 <스폰>, <블레이드>, <맨 인 블랙>, <배트맨>, <탱크걸>, <쉐도우> 등 그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록을 소유하고 있다.

역시 37년 동안 위명을 날린 작품.
어린 시절 <스타워즈> 3부작을 보며 우주를 꿈꿨던 이들이 20년 지나 새로운 시리즈를 품고 들어왔을 때의 열광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쌓아 놓은 만화책이 책장 한 끝을 넘어서는 드문 경우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가 검은 흙바닥을 적시고, 꼭 그 빛깔의 옷을 입은 이들이 번호가 찍힌 손을 한 채 끌려간다. 홀로 코스트의 비극 한 가운데 섰던 마그네토(이안 맥켈렌)가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의 독립, 혹은 지배를 외치는 건 트라우마일까, 저항기재 일까?

소설 같은 음모이론을 접어두고서 본다면 나치즘이나 파시즘 등의 극대화된 쇼비니즘은 증명할 수 없는 민족의 우월성을 명분으로 내세우기 마련이다.

특별한 종족을 주장했던 이들의 강제력으로 가족을 해체 당했던 마그네토는 '가까운 미래'인 지금 오히려 호머 수피리어들을 '형제'라 부르는 의사 가족을 통해 인류를 소비하고 지배할 계획을 짜고 있다.


@ 욕심, 끝없는 함정
원작을 가지고 영화 만들기에는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원작이 담고 있는 캐릭터와 배경을 열심히 설명하려다 이야기가 잠식되는 경우.
둘째
대폭적인 물갈이로 주인공의 형체만 가진 전혀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경우나 혹은 고정 팬들을 대상으로 설명 없이 시리즈의 '영화판'을 만드는 경우가 그 세 번째다.

이 전자에 가깝다면, <딕트레이시>와 이 각각 두 번째, 세 번째에 어울린다 하겠다.

처음 책을 펴보던 자신에게 그만한 아이가 생겼을만한 세월을 가진 만화를 95분 짜리 영화로 줄인다는 건 당초 어려운 일이었을 테다.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대결구조가 명확한 작품-<수퍼맨>같은-이라면 몰라도, 300이 넘는 캐릭터가 지나가고, 'man'아닌 'men'을 다루는 만화였으니 특히 그렇다.

영화 은 열명이나 되는 주요 등장인물을 차례로 소개하는 데에 이어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를 통한 사건 설명까지, 곳곳에서 드러나는 속편의 의도에 몸을 맡겼는지 친절하고 느긋하게 절반에 이르는 시간을 허비한다.

호모 수피리어, 즉 특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을 등록하고 관리하자는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지금, 거부를 넘어서 점령을 꿈꾸는 마그네토와 무한히 인류를 믿기 원하는 프로페서 X의 대결은 6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말콤X와 마틴 루터 킹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아쉬울 손
철학 없는 역사여.


@능력, 유한의 우물
만화 속의 수퍼 히어로들은 언제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엑스 멘들은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없어 고립되고 뭉쳐야 했던 이들.

기억할 수 없는 어느 때, 온몸의 뼈가 깨어지지 않는 금속인 아다만티움으로 교체되고,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갖게된 울버린(휴 잭맨)과 자신도 모르는 새 사춘기 시절 발생한 초능력으로 첫사랑을 죽음에 가깝게 만든 로그(애나 파킨)가 극의 중심을 맴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는 인류에 대한 옹호와 증오로 대립하는 프로페서 X와 마그네토의 외부 갈등에 사이클롭스(제임스 마드슨)와 울버린의 내부갈등이 발생한다. 대의와 팀에 충실한 사이클롭스와 욕구와 자신에 근접한 울버린의 사이엔 엑스 멘의 대변자이자 의사인 진(팜케 젠슨)이 자리잡고 있다. 성향과 사랑을 내세워 충분히 '엑스 멘'이라는 팀을 긴장선상에 올릴 수 있었을 텐데도 브라이언 싱어는 여러 인물들이 불어 일으키는 의혹의 증가와 해결의 대명사 <유주얼 서스펙트>를 까맣게 잊었는지 딴전 부리기에 여념 없어, 안타깝게도 싱거운 말싸움에서 그치고 만다.

이렇게 흐릿한 대립구조는 능력에 집중된 가치부여로 극중의 모든 인물에 강요된 금욕주의를 통해 강조된다. 결국 능력은 있지만 사랑은 없고, 대적은 있지만 증오는 없는, 이들을 사람 아닌 사람 즉 돌연변이들로 몰아넣고 만다.

당연히,
위기를 앞두고 쓰러진 프로페서 X가 건강히 살아올 줄 알고, 야욕은 그대로인 채 감금되어 있는 마그네토와 태연히 체스를 놓고, 팀을 떠나 비밀을 찾아 웃으며 가는 울버린을 모두가 아쉬운 손으로 잡을 필요가 없게된다.


@영화, 하지만 마력.
길떠난 울버린의 비밀, 꺾이지 않는 마그네토의 야심, 살아남은 돌연변이 등. 영화 곳곳에 속편의 흔적을 뿌려 놓느라 이야기를 흩어 논 것이 힘없는 싱어의 탓만은 아닐 터.

허나
용서할 수 없는 한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마그네토는 UN회담 참석차 뉴욕에 모여든 세계 정상 모두를 돌연변이 혹은 죽음으로 몰아 넣기 위해 로그의 에너지를 이용한다. 자유의 여신상 끝에 매달린 로그의 주위엔 변이 장치가 돌기 시작하고 울버린은 스톰(할리 베리)과 진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아 그녀에게 근접한다. 회전으로 발생한 에너지 파장은 점점 커져 바다에 퍼지고, 마그네토의 염력이 이를 막으려는 울버린을 향하는데...

'울버린과 마그네토의 대결'에 잔득 힘이 들어가고 있던 찰나.
뜬금 없는 세계 정상 부처들의 의자를 뒤집고 도망치는 혼란은 풍자가 긴장을 누른 우스운 결과를 낳았다. 차라리 <인디펜던스 데이>의 수많은 폭발씬과 군중씬은 순진한 의도만큼 충격적이었던 게다.

같은 형태로 지구의 평화가 돌아오기까지 세 번 정도 반복되는 '샷, 리버스 샷'-교차 편집이라 하기 보다, '때리는 주먹에 찌그러진 얼굴'과 같은 반응 샷이 어울리는 말이다.-은 싱어의 이력에도 기억하는 이에겐 부끄러운 조각이 될 것이다.

그래도.
돌아보게 되는 것을..

자유의 여신상 머리 위에서 울버린과 함께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발걸음 앞에 날아와 놓이던 길.
휘어져 문을 만드는 창살.
노랗게 반짝이던 미스틱(레베카 로민 스테이모스)과 토드(레이 팍)의 눈.
아프게 솟아오르는 울버린의 칼날.

모두가 애정이 되어
벌써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구나.

<딕 트레이시>보다 예쁘지 않아도.
<비트>만큼 생생하지 못해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