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식스티 세컨즈] 거대한 제작자와 희미한 감독

열혈연구 2000. 7. 14. 23:03
식스티 세컨즈


@제작의 힘

얼마나 알고 있는가?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눈앞에 떠오르는 영화인들 중
모두를 제하고 제작자만 남겨보도록.

어디 몇 명이나 있나.

이태원에서 신철, 이춘영, 이은을 지나
강우석까지-이는 빼자 감독겸업이니-.

그럼 눈을 돌려 외국으로 가볼까?
어디~~ 음~~

스필버그나 루카스도 감독이니 접어두고
더글라스나 크루즈, 스톤은 배우니 관두고.

'제리 브룩하이머'
번뜩 떠오르는 이가 그밖에 없는 걸 보니
유명하긴 하나보다.

그가 만든 것들 생각해보자.
'아마겟돈' '콘에어' '더 록' '크림슨 타이드', '베버리힐스 캅',
저 멀리 '플래쉬 댄스'까지.
혹시 이름을 깜빡하셨던 분들도
감탄사 하나씩 더하며 알아채셨을 테지.

그렇다.
바로 이런 영활 만드는 사람.
매년 여름이면 어울릴 영화를 들고
감독 이름보다 커다란 활자로 포스터를 장식하곤 하는
그가 이번엔 자동차 50대를 하루에 훔치는
멤피스(니콜라스 케이지)와 일당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은퇴한 전설적인 차도둑 멤피스는
동생 킵(지오바니 리비시)의 목숨이 달린
레이먼드(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의 주문을 받아야한다.
손씻고 사는 동료들을 모두 모으는데 걸린 이틀을 빼면
이제 스물 네시간.
명차 50대를 훔쳐 선적해야한다.
그의 주변엔 자동차절도 전문 경찰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다.
밤이 되었고.
자 이제 작전개시.

도미닉 세나는 먼저 만들었음에도
'Natural born killer'의 아류라는 오해에 묶이고만
'칼리포니아'의 감독,
안타깝게도
이번엔 제작자 제리의 이름에 가려 뒤편에 남고 말았다.

누가 봐도 이건 '제리표'영화이니.

남자들이 열심히 뛰고 달리면서
최소한의 로맨스 경험 또는 유지시키려다
적당히 커다란 폭파 속을 뚫고 영웅이 되며 남기는
마지막의 휴머니즘.



@50대의 명차.

줄줄이 콘테이너선에 선적되는
50대의 자동차들을 기껏해야
제작사의 이름, 브랜드명밖에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

하지만.
제리의 영화가 실루엣만으로
아니 멀리 들리는 엔진소리만으로도
모델과 년식을 알아채는 이들을
위할 리 없는 것.

멤피스가 애지중지하는
1967년형 무스탕 GT500,
앨리노어를 손에 넣기까지
수많은 경찰차와 헬리콥터를 피해
도심을 가로지르며 따돌리는
순간을 즐기라는 것임이 분명한데..

30년이 지난 '프렌치 커넥션'을 기억하시는지.

기억이란
언제나 눈앞의 현상보다 거대한 것이라는
오류를 한 수 접더라도,
전철을 쫓으며 달려가던
진 해크만의 자동차는 뇌리에 생생하기 그지없다.

잦은 퀵줌과 짧은 지속시간,
격렬한 배기음을 잔뜩 깔고
갖가지 사이즈와 앵글로 조합한
'식스티 세컨즈'의 추격씬은
교각 밑과 도로를 움켜쥐듯 달리던
'프렌치 커넥션'의 위명에 접근하지 못한다.

아니 이건.
40분에 이른다는
74년의 원작 추격씬을 보지 않아서였을 수도.
그림같은
'MI2'의 모터사이클 씬을 보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동료애와 대결구조.

제리 영화의 흥미는
커다란 스케일의 액션들과 더불어
이야기 중심에 선 한 남자를 대적하는 적이나
둘러싼 동료들과의 애증관계를 통한 긴장감
바로 그것이다.

다소 촌스럽기도 하지만.
가슴 찡한 감동을 요구하는 바탕에 둔 도구는
캐릭터의 생생함.
'식스티 세컨즈'에서 쑥 빠진 게 그것.

자동차 정비소를 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던 오토(로버트 듀발)가
꼭 쥐는 아내의 손을 놓고
멤피스를 따라 나설 때만 해도 끄덕여지던 고개는
절도계획추진에 따라
하나둘 모여든 동료들의 개성이
어둠에 하나씩 지워짐에 따라 굳어가기 시작한다.

개중
연인으로 등장한 사라(안젤리나 졸리)의
멋지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합류했을 때만 해도
가득하던 스타일은
포르쉐 네 대를 훔친 후 사라져
멤피스의 조수석만 채워주고 만다.
정말 끝까지.

범법과 준법을 틀로
날렵하게 멤피스와 대립하는 설정의
레이몬드와 캐슬벨형사(들로이 린도) 역시
초반의 겁주기에 반해
썩 이해할 수 없는 꽁무니 따라다니기로
한숨을 더해준다.

결국
대결구조 혹은 동료애는
멤피스의 '전설적인 차량절도술'앞에
하나둘 무릎을 꿇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멤피스는 가족을 수호한 영웅인가.
기소중지 된 범죄자인가.
이것만이 가장 커다란 윤리적 난제일 뿐
모두가 명백하다.

그것이 인물이든 이데올로기든, 자연이든간에
언제나 위협이 되는 적들이
철저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인본주의나 가족주의를 바탕으로한 그의 영화는
철저히 우파적이다.

그래 흑 아니면 백이지.


@돌고,돌고,돌고

제리는 자신의 바퀴를 굴려
또 다른 자국을 남겼다.
그것의 기어가 전진이든 후진이든.

니콜라스 케이지가 액션배우로 자리잡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 시작이 '더 록'이었던 듯 한데..

잊혀진 청춘 배우
-존 트라볼타와 재기시절도 비슷하다-
였던 그가
어느덧 스타로 자리의 뿌리를 내린 것.

그래도 진부하지 않은 건
육신뿐인 맹목 영웅이지도(아놀드, 실베스타),
신경질과 특이한 반사회적 인물(브루스, 멜)이지도 않은
또 다른 영웅상이라는 것.

감성 가득한 눈매와 벗겨진 이마에서
승리 후 짓는 환성과 미소까지.
단단한 육신보다 약점 투성의 인간미를 담고 있는 그가
다양한 장르에서 어색치 않을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그에 맛서는 안젤리나 졸리 역시
비슷한 궤적으로
연이은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방향이 액션아닌 섹스의 차이일 뿐.

'식스티 세컨즈'안에는 곳곳에 멋진 배우들이 눈에 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건 감독과 제작자의 책임이었을 터.
아쉽기만..

날로 치솟는 기름 값은
OECD의 들썩이는 엉덩이 때문일 테지만,
앨리노어를 탈출케 한 질소 추진 단추처럼
새로운 것이 필요할 때다.

시절은 돌고 돌아,
구태의연해진
적절한 재료의 정해진 요리법 같은 영화들은
화석연료에 기댄 의지도가 줄어들게 분명한
자동차처럼 조금씩 사라질 준비를 해야지 않을까.

잡종영화(Hybrid Film)들의 등장이 바로 그렇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하시니라 (요한복음 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