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이 글은 오직<배트맨 대 슈퍼맨>을 본 관객을 대상으로 합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DC의 두 슈퍼히어로가 기를 못펴고 있다. 한국에서 <슈퍼맨>은 늘 그랬다. 레이건 시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낙마 사고 즈음부터다. 미소냉전시대의 권토중래를 꿈꾸는 미국의 바람과 현실이 소원한 것처럼, 한번 쓰러진<슈퍼맨>은 이곳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다크나이트> 시리즈로 돌아온 배트맨의 힘도 한국에선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어벤져스>시리즈로 이어지는 마블 영화들에 대한 열광에 비춰보면 DC의 성적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슈퍼맨 리턴즈>는 그렇다쳐도, 한국 관객들은 <맨 오브 스틸>도 외면했다.
그래도 명불허전. DC의 견고한 양대축인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진표는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맞붙은 마블의 것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뚜껑이 열렸다. 한국에서 이 영화의 성공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엄청나게 장악한 스크린들 위에서 처절하게 전사하더라도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저스티스리그> 시리즈가 뒤를 이어 선보일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적어도 DC가 마블과 다른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증명했다. 큰틀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그림들. 이것이 뻔하고 황당한 슈퍼히어로 영화들로 세계 관객들의 주머니를 터는 할리우드의 힘이다.
슈퍼맨/배트맨은 캡틴 아메리카/아이언맨/스파이더맨과 구별되는 확연한 설정이 있다. 아버지의유산(legacy)이다. 둘은 모두 아버지의 희생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그리고 아버지가 부여한 힘으로 영웅의 자리에 섰다. 브루스 웨인은 프랑스인들에게 모피를 팔던 사냥꾼-<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바로 그 역할-이었던 선조를 이야기한다. 슈퍼맨도 “나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심지어 악당 루터마저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전형적인 외디푸스의 궤적이다. 상상계에서 어머니와 사랑에 빠져 있던 아들은 말귀를 알아 듣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 저편에 묻어버리고 아버지의 법인 상징계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다. 늘상 그렇게 아들은 체제의 일원이 된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유산을 물려 받은 아들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웨인이 긴박한 통화를 하고 있다.아직 슈트를 입지 않은 인간 배트맨이다. 그는 자신의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탈출을 전화로 명한다. 그리고 웨인 빌딩은 9월 11일의 쌍둥이 빌딩처럼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하나씩 아버지가 남긴 것들이 사라진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지적한다.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 저편으로 보내고, 아버지의 세계로 들어간 인간은 결국 자본주의의 부속물로 기능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 궤적을 벗어나려는 일탈자의 탄생을 응원한다. 체제에 자신을 가두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 순응자로서 개인이, 그 틀을 벗어날 때 변화가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안티-외디푸스(Anti-Oedipe)의 파생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이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고,또 하나는 구원자로서 일탈자의 탄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안티-외디푸스의 길을 걸어간다. 영화의 시작은 웨인가의 장례식이다. 부모를 묘지에 묻는다는 것은 아들이 홀로 서야한다는 약속이다. 어린 웨인은 이를 거부한다.그는 무덤에 영면하는 부모를 등지고 숲 속으로 달려간다. 구멍 속으로 추락한다.박쥐들이 쓰러진 그를 들어 올린다. 빛을 향해 날아 오른다. 배트맨의 탄생이다. 웨인은 반복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린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쓰러진 아버지의 유산을 밀어내고, 무의식 저편에서 되살아난다. 무너진 웨인 빌딩, 쓰러지는 고담시는 아버지의 법(Father’s law)에 해당하는 자본주의의 붕괴로 읽을 수 있다. 웨인은 1%의 위험부담을 제거하기 위해 슈퍼맨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슈퍼맨=구원자’로 이루어진 틀을 깨는 일탈자를 자처한다.
질서에 대한 혼란은 슈퍼맨도 배트맨과 다를 바 없다. 경제와 함께 인간이 세운 또 하나의 체제인 정치의 한복판에 그가 끌려나온다.세상이 그를 위험요소로 몰아간다. 그는 더 이상 ‘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이때 그를 찾아온 이는 죽은 (의붓)아버지다. 그는자신의 아내를 만남으로써 구원에 이르렀다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슈퍼맨은 (의붓)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배트맨을 죽여야 한다. 둘의 대결이 시작된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가진 단 하나의 약점을 노린다. 생사의 경계에서 슈퍼맨의 소리가 들린다. “마사를 구해야 해”
과거‘마사’라는 호명(appellation)은 웨인을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번에도 그 이름은 배트맨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대결은 연합이 되고, 아버지의 유산은 어머니의 부활로 옮겨간다. 자신의 임무를 규정하던 아버지를 넘어서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해주던 어머니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배트맨은 자신이 쓰러트린 슈퍼맨을 대신해 그의 (의붓)어머니인 마사를 구하러 날아간다. 어머니를 구원하려는 둘의 갈망은 결국 여성에 의한 구원을 이끌어낸다. 백년의 침묵을 깨고 인류 앞에 존재를 드러낸 원더우먼의 도래다.
원더우먼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자 어머니의 그림자로서 여성을 벗어던진다. 방패, 칼, 팔찌의 조합은 거세는 물론이고, 거세공포가 원천적으로 부재한 강력한 아마조네스다. 부모아(父母我)의 삼각체제는 이제 원더우먼-배트맨-슈퍼맨의 삼각형으로 재편된다. 그 맨 앞에 원더우먼이 자리하고 있다. ‘저스티스의 시작’이라는 부제처럼, 이어지는 영웅들의 연합에는 상하가 아닌 평등, 얽메이지 않은 비규율, 무의식에서 건져낸 여성성이 도드라질 것이다.
세상은 틀을 깨는 일탈자가 구원자이기를 소망한다. 영웅신화를 꿈꾸는 이들의 소망은 순수할지언정, 현상은 파시즘의 전조를 내포한다. 하필이면 2016년, DC와 마블이 자신들의 영웅들끼리 대결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이유로 미국의 대선 상황을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럽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의 선전과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의 부활은 렉스와 원더우먼만큼이나 무섭고 흥미롭다. DC는 적어도 원더우먼의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다시 일어날 슈퍼맨에 대한 희망과 끔찍해질 렉스에 대한 두려움도 담겨 있다. 슈퍼맨과 배트맨 입장에서 서운할지 몰라도, 아무래도 저스티스리그의 미래는 원더우먼에게 달려 있는 듯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두시간 반동안 목숨걸고 싸웠지만, 결과는 거대한 <원더우먼>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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