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인사이드 아웃> : 시네마 에모티오

열혈연구 2015. 7. 17. 22:18

나는 온전히 살고 있다적어도 부모님 앞에선 그런 척한다반대로 친구연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척턱없이 강한 척한다둘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보여주고 싶은 나를 융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또 혼자 있을 땐 끝없이 불안해 한다결정장애에 귀차니즘까지 한심하기 그지 없다감추고 싶은 그림자(shadow)에 가깝다삶을 취사선택하고 실행하는 자아의 실체는 친구나 연인에게 보여준 것과 큰 차이가 있다부모님께 됐어’, ‘알아서 할게’, ‘뭘 안다고’, ‘왜 그래’… 말을 쏟아내는 잘난 자식의 모습도 진짜는 아니다부모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을 처음 봤을 때부터제법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지금까지 우리의 양면(페르소나와 그림자)을 가장 많이깊이 들여다 본 사람들이다우리의 사람됨(wholeness)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피트 닥터가 사춘기를 맞은 자신의 딸을 보며 기획했다는 <인사이드 아웃>은 한 친절한 부모의 육아일기처럼 읽힌다내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남의 자식 키우는 방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까적어도 세가지 측면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그렇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첫번째 장점을 단순의 미학이라 부르자. ‘이사와 전학이라는 외적 변화가 소녀 라일리에게 끼치는 내적 영향’. 조금 어렵게 정리한 영화의 주제다짧고 명료하다스토리도 간단하다고향과 옛 친구가 그리운 라일리의 하룻 저녁 이야기다복잡한 플롯도 없다영화는 오직 라일리가 겪는 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여기서 많이 들어본 심리학관련 지식들이 쏟아진다의식무의식전의식/단기 기억,  꿈의 재료와 조작상상과 잠재의식사고와 생각인격형성 등 숱한 지식들이 등장한다

 

쉬운 것을 쉽지 않게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인 것만은 아니다’ 참 불편한 문장이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긴 쉽다는 뜻이다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상대의 생각을 온전히 아는 건 불가능하다거기에 정리가 덜된 생각을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풀어내면 난감하기 그지 없다반대로 어려운 것을 쉽게 이해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다어려운 개념이니 스스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파악했더라도 쉬운 전달을 위해 내용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춘기 소녀의 심리변화에 대한 소고라고 이름지어도 어색하지 않은 심리학 연구서 같은 영화다그런데 전혀 어렵지 않다이보다 쉽게 연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피트 닥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을 기쁨슬픔분노혐오두려움으로 단순화한다여기에서 두번째 반짝이는 점이 보인다바로 슬픔의 미학이다부모님이 연습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건내가 아빠가 되고 나서였다모든 게 낯선새로운 순간들이 시작됐다온전히 준비된 척했을 뿐초짜 아빠에 지나지 않았다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엔 두려움이 컸다말귀도 모르는 아이에게 자지 않는다고 화낸 적도 있다똥묻은 엉덩이를 손으로 닦아줘도 역겹지 않았다첫 출장지에서 아이가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칸영화제의 화려함도 슬픔으로 금새 바뀌었다아들은 둘이 되었고훌쩍 자랐다그렇게 9년 가까이 지난 시간을 한 단어로 정리하라면기쁨을 꼽겠다

 

라일리의 마음 한 가운데에도 기쁨이 자리하고 있다차분한 슬픔이 중심에 있는 착한 엄마다혈질 버럭이가 가운데 있는 아빠와 다른 형태다라일리의 마음처럼 긍정주의가 세상을 이끌던 때가 있었다성장과 풍요가 핵심 가치였던 시절이다긍정적인 생각적극적 사고 방식이 세상을 밝게 이끌어 간다고들 주장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웃으면 행복해진다웃음을 강요하기도 했다그리고 그렇게 웃으며 지내던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중요한 것은 억지 웃음보다는 슬픔을 인정하는 태도라는 걸. 2400년을 지나 소크라테스에게로 돌아간 셈이다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의지도노력도긍정도 아닌 인정이다새로운 시작은 남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내가 아프다는 것을힘들고 어렵다는 것을인정하는 데에서 가능하다. <인사이드 아웃>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과정을 보여준다그리고 색깔을 통해 이 감정의 뒤섞임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이 영화의 장점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있다특히 원색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한 디자인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전작인 <>의 풍선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그러나 감정 없는 예쁜 풍선보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간다기쁨(노랑), 슬픔(파랑), 까칠(초록), 소심(보라특히 버럭이의 빨강색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감정이라는 존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감정은 표현을 통해서만 전달된다쿵쿵거리며 뛰는 심장의 박동삐질삐질 새어나오는 땀얼굴근육의 수축과 이완작용처럼 신체의 내부에서 외부로스스로 드러나는 감정이 있다더불어 일기장에 써내려간 글, SNS에 사용하는 이모티콘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처럼 도구를 활용해 의도적으로 나타내는 감정도 있다이러한 감정들을 읽고해석하고대응하는 것이 소통이다소통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원색과 무채색빛과 어둠의 대조를 통해 소통 과정을 설명한다마음을 닫았던 라일리가 부모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일어나는 외면과 내면의 상황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이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부모들에게는 육아참고서로젊은이들에게는 교육지침서로아이들에게는 상상동화책으로 삼을 수 있다교육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관객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접근한다감정을 다룬 영화인만큼 감정으로 생각한다이성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청소년시기처럼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사람과 사건을 다룬다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를 통해 이미55년 전에 했던 일이다새롭지는 않다인간관계에 대한 감정 스위치를 잠시 꺼놓은 사람이라면슬픔이처럼 한없이 처지고 지루할 수도 있다다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오락과 예술상업과 독립 외에 영화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을 찾아낸다이제 영화는 머리에 호소하는 시네마 사피엔스와 마음에 매달리는 시네마 에모티오(emotio)로 갈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