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불어판)

< Bienvenue chez les Ch’tis > : 지역 감정 아니 애정

열혈연구 2008. 3. 23. 03:20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다니 분의 두번째 연출작.

 

감독 : 다니 분

상영시간 : 1시간 47

개봉일 : 2008 2 27

출연 : 다니 분, 카드 메라드, 조에 펠릭스 등

 

 

지역 감정의 역사

20세기 중후반,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지역감정이었다. 휴전선으로 갈린 한반도의 절반은 이로 인해 동과 서로 또 한번 나뉘어야 했다. 실제로 둘 사이엔 왕래도 드물었다. 마땅한 직통 철도 하나 없이, 시멘트로 만들어진 왕복 2차선짜리 88올림픽고속도로가 둘을 잇고 있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다.

 

20세기판 지역 감정의 역사는 박정희김대중이 맞섰던 71년 대선을 그 시초로 잡는다. 하지만 지역 감정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아마도 태동은 삼국시대였을 것이다. 서로 싸우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후 고려시대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는 호남 혹은 충청 지역에 대한 차별이 적혀 있었고*, 조선시대 숙종부터 정조 집권기 사이에는 영남 지역 인사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었다. 이처럼 고래로 지역감정은 정략적인 이유로 정치권에 의해 만들어졌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영호남 사이 지역감정은 조금 누그러지나 싶더니, 강남과 강북간 감정이 들썩이고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강남북 지역감정은 이전과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치가 아닌 경제적인 원인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을 놓고 지역감정과 관련한 단어들이 언론에 돌기도 했다. 정치적 지역감정에 기반한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과 경제적 지역감정에 뿌리를 둔 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가 그것이다. 그런데 < Bienvenue chez les Chtis >를 보면 지역감정은 꼭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대박 예감

Salon-de-Provence의 우체국장인 필립은 아내의 채근에 밀려 코트 다쥐르 지방으로 발령을 신청한다. 그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심사관 앞에 장애인인 척하기까지 하지만 거짓이 들통나면서 문책성 인사 이동을 당하고 만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북부 지역의 베르그라는 곳으로 옮겨간 필립.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 먹기 힘든 특이한 음식 그리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골수 남부 사람 필립의 북부 생활은 힘들게 시작된다.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 Bienvenue chez les Chtis >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500만 관객을 불러들이면서 개봉 첫 주 기록을 갈아치웠다. 배급사 파테는 2주차에 오히려 상영관을 40개나 늘렸고, 개봉 15일 만에 1천만을 돌파했다. 이러다 < La Grande vadrouille >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영화 흥행 기록(1,727만명)42년 만에 깨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감독인 다니 분은 연출의 변에서 자신이 살았던 Nord-Pas de Calais 지역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밝혔다.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생생한 캐릭터, 낯선 문화가 유머로 전환되는 자연스런 진행 그리고 갈등과 해소의 시기 적절한 조화는 지역 감정을 애정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하다.  

 

아니 한 나라의 국민 20% 이상이 본 영화는 특별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투리는 유행어가 되고, 지역의 관광 상품이 개발되는 광경을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각 지역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색을 이해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 Bienvenue chez les Chtis >는 보러 가기 힘들게 하는 구석을 가지고 있다. 문화적 뉘앙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웃을 수 있다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이 그 첫번째 이유다. 안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빠른 불어 대사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섞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행여나, 매진된 까닭에 허탕치고 오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관객들과 함께 보는 필립의 좌충우돌 생활기는 삶에 조그만 행복한 기운을 더하기에 제격이다. 프랑스의 지역 감정에 대한 작은 이해는 덤으로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