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와 소통, 이제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러고 보니 근 한달 만에 마무리 글을 올리는군요. 이런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한편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좀 엉뚱하지만 <야수의 날>이나 <무언의 목격자>도 좋겠구요. 히치콕의 모든 영화도 즐겁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루한 글들 읽으신 독자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합니다. 시원한 여름, 다음 주엔 다시 시원한 영화시리즈를 선보이겠습니다.
보다 깊은 소통을 위하여
관객이 영화와 보다 깊은 단계의 소통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번째 전제는 피드백(feedback)의 원칙이다. 소통은 송신자와 수신자가 메시지를 교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쌍방간의 메시지 교환과정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통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수용할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신자가 송신자에게 보내는 여러 유형의 피드백이 송신자의 메시지에 반영되면서 보다 많은 의미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보다 정확한 소통이 성립한다. 관객은 미스터리 영화를 관람하면서 관음자적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사건의 전개 단계마다 자문하고 반응한다. 단계별로 만족할 만한 반응이 나온다면 결말을 향해 산술급수적인 기대심리를, 그렇지 않다면 기하급수적인 기대심리를 준비하는 식으로 말이다.
두번째 전제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해석해 보는 것이다. 앞선 ‘피드백의 원칙’이 관객의 관음자적 위치를 이야기했다면 이는 관객의 동일시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영화는 주로 피해자인 여성을 내세워 새디즘(sadism)적인 성격을 띤다. 또 관객은 필연적으로 영화를 통해 쾌락을 허용 받는 마조히즘적 구조의 틀을 소유한다. 서로 상치된 두가지 개념을 동시에 소유한 관객은 등장인물의 하나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상영시간 동안 여러 인물들과 수 없이 많은 역할전이(role taking)를 행하게 된다. 이러한 소통은 관객이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갖는다. 영화 속에 동일시된 이미지 혹은 인물과 소통하는 관객은 예언자를 찾아가는 옛 군주의 마음처럼 사건의 파국이 이르기 전에 결말에 먼저 도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보다 깊은 소통으로 관객을 이끄는 것이다.
마지막 전제는 침묵에 빠지는 것이다. 시주라(caesura)는 원래 시(詩)의 행 중간에 있는 휴지부 또는 단절을 뜻한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개념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 받은, 영화에서 시주라(리드미컬한 단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관객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끊임 없는 소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미스터리 영화가 다른 영화와 구별 지어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은 내다볼 수 없는 현재와 미래 사이, 그 단절의 순간에 자리한 시주라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획득한다. T.S. Eliot의 “말은 말해진 후에 침묵에 든다” 는 말처럼 더 깊은 소통에는 시주라가 주어진다. 미스터리 영화에 존재하는 시주라는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상황을 기대하게 만드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소통에서 나오기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란 매체가 수용자인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의 방법을 생략한 채로 어떻게 소통을 이루게 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그리고 관객과 소통에 가장 적극적인 장르인 미스터리 영화를 통해 이를 분석했다. 즉 소통을 의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존재 자체로서 전하는 메시지를 목적소통과 이면소통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구별하고 이것들이 다시 어떻게 미스터리 영화 안에서 작용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미스터리 영화는 목적 소통과 이면 소통을 이용해 관음자이자 동일시되어 있는 관객과 소통한다. 그리고 정해진 상영시간 내에서 관객과 영화는 보다 깊은 소통을 나누기 위해 피드백과 역할전이 그리고 시주라를 이용한다. 이러한 소통의 단계와 방법을 거치면서 미스터리 영화의 관객은 희열과 좌절을 경험하고 결과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수용자로 자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식스센스>의 한 시퀀스를 보면서 글을 마무리하자. 크로는 콜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다. 콜은 자살한 빈센트와 같이 사회적 불안과 심리적 고립을 갖고 있는 9살 소년. 크로는 빈센트를 죽게 한 죄책감에 비슷한 증세인 콜을 진심으로 도우려 하지만 콜은 크로에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어느날 밤 크로는 불안해 하는 콜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콜은 금새 싫증을 내고 이야기를 좀더 재미있게 하라며 힌트를 건넨다. 이때 크로의 반응은 처음엔 콜의 지적을 외면하다가 잠시 후 이를 웃으며 받아들인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며 상대와 소통의 길을 튼 것이다. 그러자 콜도 이제껏 닫았던 문을 열고 크로에게 다가간다. 이후 한번 채널을 맞춘 둘의 소통은 단계를 높이고 가로 막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다. 미스터리 영화는 관객과 쉬지 않는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당신과 소통을 소원하고 있다. 점점 더 깊어 가는 소통을 말이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3 : 8,9)
보다 깊은 소통을 위하여
관객이 영화와 보다 깊은 단계의 소통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번째 전제는 피드백(feedback)의 원칙이다. 소통은 송신자와 수신자가 메시지를 교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쌍방간의 메시지 교환과정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통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수용할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신자가 송신자에게 보내는 여러 유형의 피드백이 송신자의 메시지에 반영되면서 보다 많은 의미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보다 정확한 소통이 성립한다. 관객은 미스터리 영화를 관람하면서 관음자적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사건의 전개 단계마다 자문하고 반응한다. 단계별로 만족할 만한 반응이 나온다면 결말을 향해 산술급수적인 기대심리를, 그렇지 않다면 기하급수적인 기대심리를 준비하는 식으로 말이다.
두번째 전제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해석해 보는 것이다. 앞선 ‘피드백의 원칙’이 관객의 관음자적 위치를 이야기했다면 이는 관객의 동일시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영화는 주로 피해자인 여성을 내세워 새디즘(sadism)적인 성격을 띤다. 또 관객은 필연적으로 영화를 통해 쾌락을 허용 받는 마조히즘적 구조의 틀을 소유한다. 서로 상치된 두가지 개념을 동시에 소유한 관객은 등장인물의 하나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상영시간 동안 여러 인물들과 수 없이 많은 역할전이(role taking)를 행하게 된다. 이러한 소통은 관객이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갖는다. 영화 속에 동일시된 이미지 혹은 인물과 소통하는 관객은 예언자를 찾아가는 옛 군주의 마음처럼 사건의 파국이 이르기 전에 결말에 먼저 도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보다 깊은 소통으로 관객을 이끄는 것이다.
마지막 전제는 침묵에 빠지는 것이다. 시주라(caesura)는 원래 시(詩)의 행 중간에 있는 휴지부 또는 단절을 뜻한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개념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 받은, 영화에서 시주라(리드미컬한 단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관객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끊임 없는 소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미스터리 영화가 다른 영화와 구별 지어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은 내다볼 수 없는 현재와 미래 사이, 그 단절의 순간에 자리한 시주라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획득한다. T.S. Eliot의 “말은 말해진 후에 침묵에 든다” 는 말처럼 더 깊은 소통에는 시주라가 주어진다. 미스터리 영화에 존재하는 시주라는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상황을 기대하게 만드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소통에서 나오기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란 매체가 수용자인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의 방법을 생략한 채로 어떻게 소통을 이루게 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그리고 관객과 소통에 가장 적극적인 장르인 미스터리 영화를 통해 이를 분석했다. 즉 소통을 의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존재 자체로서 전하는 메시지를 목적소통과 이면소통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구별하고 이것들이 다시 어떻게 미스터리 영화 안에서 작용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미스터리 영화는 목적 소통과 이면 소통을 이용해 관음자이자 동일시되어 있는 관객과 소통한다. 그리고 정해진 상영시간 내에서 관객과 영화는 보다 깊은 소통을 나누기 위해 피드백과 역할전이 그리고 시주라를 이용한다. 이러한 소통의 단계와 방법을 거치면서 미스터리 영화의 관객은 희열과 좌절을 경험하고 결과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수용자로 자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식스센스>의 한 시퀀스를 보면서 글을 마무리하자. 크로는 콜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다. 콜은 자살한 빈센트와 같이 사회적 불안과 심리적 고립을 갖고 있는 9살 소년. 크로는 빈센트를 죽게 한 죄책감에 비슷한 증세인 콜을 진심으로 도우려 하지만 콜은 크로에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어느날 밤 크로는 불안해 하는 콜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콜은 금새 싫증을 내고 이야기를 좀더 재미있게 하라며 힌트를 건넨다. 이때 크로의 반응은 처음엔 콜의 지적을 외면하다가 잠시 후 이를 웃으며 받아들인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며 상대와 소통의 길을 튼 것이다. 그러자 콜도 이제껏 닫았던 문을 열고 크로에게 다가간다. 이후 한번 채널을 맞춘 둘의 소통은 단계를 높이고 가로 막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다. 미스터리 영화는 관객과 쉬지 않는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당신과 소통을 소원하고 있다. 점점 더 깊어 가는 소통을 말이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3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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