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미이라2] 이야기와 볼거리의 솔직한 고백

열혈연구 2001. 6. 28. 15:38
<미이라2>가 흥행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주엔 <신라의 달밤>이 회복하리라 기대하지만… 전작 <미이라>는 평단의 지독한 혹평에 (여지 없이!) 반해 흥행에 대성공 했습니다. 시시하다고 잘난 척 말해도 재미있었답니다. <미이라2>는 전편의 변주 혹은 애니메이션판에 가까웠습니다. 별로 기대치 않았음에도 훨씬 시시했구요. 하지만, 여름은 이런 영화들을 양산케하고 관객은 더위를 식힌다는 전례는 변함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이번 주엔 (시사하다는^^) <툼 레이더>가 개봉하는군요.

미이라2 (01. 6. 24)
-이야기와 볼거리의 솔직한 고백

@시스템, 이야기 그리고 볼거리
뤼미에르와 멜리에스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끊임없는 인용은 기원을 이뤘다는 자체가 가장 큰 이유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덧입혀도 복제품은 작가 영혼의 그림자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기원을 열었던 두 가지 방식은 우리에게, 앙드레 바쟁의 그 유명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진행행의 화두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던진다. 영화는 이미지가 편집을 통해서 연속성을 획득해 가는 절차의 예술이다. 관객은 제작의 과정보다 상영이라는 방식을 통해 의미를 찾고 이를 습득한다. 개인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이 텍스트들은 오락으로 소비되기도 하고 예술의 정화를 경험케 하기도 한다. 뤼미에르가 선보인 ‘유료상영’의 기원에서 멜리에스가 내어 놓은 ‘볼거리’와 ‘이야기’의 가능성은 전자가 산업으로서 생존 방식을 규정한 시스템 구축에 흡수된 것으로 후자는 소비자와 관계를 지속시키는 매혹으로 변형되어 갔다.

스테픈 소머즈의 <미이라2>는 뤼미에르의 시스템과 멜리에스의 아이콘을 빌려 극대화 시킨 영화다. 개봉 첫 주 미국 총극장 수익의 65%를 차지하고 2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둔 것은 시스템의 도움 없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현실을 시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스템과 볼거리 그리고 이야기가 더 많은 관객을 영화 앞으로 향하게 하는 피하주사임을 외면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성공-영화인 회의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개봉 첫주 전국 49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1위를 기록했다-을 시점으로 돌아다 보기를 도모하겠다. 결론은 이미 내어 놓는 것과 같이 시스템, 볼거리 그리고 이야기이겠지만, 미심쩍은 몇 가지들을 꼬집는 ‘곁다리 짚기’ 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하자.


@자기 복제와 부활의 무한 순환
<인디아나존스>시리즈의 세례를 풍성히 받은 듯 했던 전편에 이어, 스필버그의 ILM이 만들어낸 그래픽의 세계는 <미이라2>를 애니메이션에 근접한 상상력으로 가동시킨다. 허나 이것은 창의력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반복될수록 식상해 가는 면이 있다-패러디 영화는 이 점을 활용해 관객의 기억력과 지식을 자극한다.-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모텝(아돌프 보슬루)이 부활시킨 미이라 병사들은 뭉크를 차용한 <스크림>의 가면처럼 비명 지른다. 이들이 릭(브랜든 프레이저)일행의 2층 버스를 쫓는 씬은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킨다. 버스 위에서 격투씬은 <미션임파서블>을,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의 행보는 <스피드>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사막 끝까지 매운 아누비스군대는 <스타수비 트루퍼즈>를, 하늘을 나는 비행선이 보름달과 어우러진 실루엣은 를 런던의 개폐교는 <딕트레이시>와 비슷하게 겹쳐진다. 이밖에도 다른 영화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많은 씬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하지만 <미이라2>의 영악함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미이라2>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는 “뻔한 이야기잖아?”이다. 자신이 재생하고 있는 모험물의 공식을 가리려 하지 않고 드러내는 식이다. 소머즈 감독은 전편에서 관객이 좋아하는 장면 10가지를 뽑아내어 확대 재연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알렉스는 에볼린이 도서관의 책장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유적지의 거대한 기둥을 넘어뜨린다. 사람을 흡수해 제 모습을 찾아가는 이모텝의 부활 역시 스릴러의 면을 더해 선보인다. 사막의 모래 폭풍이었던 이모텝의 능력은 강줄기를 변주되고, 아낙수나문과 그의 사랑은 에블린의 전생 기억을 통해 확연해지는 식이다. 영화는 자신이 전편을 이어 붙였다는, 즉 자신이 복제품임을 숨기지 않는다는 면에서 유쾌하다. 이는 수없이 반복되는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와도 교차된다.

영화는 기원전 3067년에서 시작한다. 스콜피온 킹(더 록)이 죽음의 신 아누비스에게 영혼을 팔아치워 얻은 파라오와 전쟁의 승리는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를 암흑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 스콜피온 킹은 <미이라2>의 이야기와 볼거리의 제공자 역할을 맡았다. 스콜피온 킹이 꿈꾼 복수와 좌절 그리고 그가 불러낸 아누비스 군대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잔잔하지만 거대한 흐름이다. 제사장 이모텝과 왕비 아낙수나문의 사랑을 모티브로 삼은 전편에 비해 이번 영화가 다소 건조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스콜피온 킹이 내세운 복수와 좌절이라는 전제는 릭과 에블린(레이첼 와이즈)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는 설정을 압도한다. 극중 내내 릭과 에블린은 사랑을 확인하고, 아들 알렉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표하지만, 차갑게 돌아서는 아낙수나문의 등을 보며 나락행을 선택한 이모텝처럼, 로맨스는 복수와 좌절로 침잠하고 만다.

이모텝의 부활을 기원하는 사람들과 아낙수나문의 환생체인 여인, 전생을 기억하고 자신 역시 중생하는 에블린, 살아서 스콜피온 킹의 피라미드를 보호하는 피그미 미이라 등 ‘되살아남’은 내부에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다. 하지만 살아 났다가 모래처럼 사라지는 아누비스 군대와 미이라들처럼 되살아남의 이미지의 행방이 결국에는 온데 간데 없다는 점이 <미이라2>의 약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이모텝의 부활을 보자. 그의 부활은 세계 정복이기도 아낙수나문과 못다한 사랑을 이루기도, 9년 전의 복수를 하기도 위함이다. 이 세가지 목적은 스콜피온 킹이 던져 놓은 전제로 인해 세번째 목표에 집중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세계 정복은 요원하고 아낙수나문과 사랑 역시 흐릿해 지는 식이다. 고고학적 연구에서 시작했던 릭과 에블린의 연구 역시 성과에 대한 아무런 집착 없이 아들로 전이되고, 살아난 미이라들에게 쫓기기 만을 반복한다. 모티브 제공을 위해 부활한 스콜피온 킹의 운명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는 아누비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대가로 봉인된 상태였다. 그가 되살아남과 동시에 아누비스 군대가 부활하며 전쟁을 일으킨다는 설정은 파라오의 대군대로도 이기지 못했던 것을 메자이의 후손들이 칼 만으로 이겨낸다는 것처럼 전갈의 몸뚱이로 부활한 자신처럼 황당하기 그지 없다. 3000년을 넘게 갇혀 있던 그가 운명처럼 부활해 하는 일이라곤 우연히 창에 가슴을 꿰고 사라지는 것 역시, 제작에 이미 착수했다는 속편 <스콜피온 킹>에서 처럼 모티브로 만 쓰이고 있는 안타까운 그의 용도를 설명해준다. 부활과 복제에 의해 배경과 미래는 준비되어 있지만 스스로 생생하지 못한 캐릭터가 된 대표사례다.


@모험물의 지독한 보수성
<미이라2>는 좌충우돌 모험물의 당연한 종결방식인 해피엔드에 끝맺음을 맞춰 놓았다. 모험물로 규정되는 영화들은 비슷한 내러티브 구조를 형성한다. 주인공이 어린인 경우 주로 분야에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다.-<인디아나존스>, <툼 레이더> 만약 어린이라면 호기심이 강한 말썽꾸러기의 경우가 많다.-<쥬만지>, <구니스>. 그들은 의뢰인의 요청이나, 성경 신화 전설이 담겨 있는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하는 식으로 사건에 말려 든다. 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침입을 거부하는 선조의 저주나 기계장치, 혹은 보전을 유지하려는 숭배자들이다. 이를 극복하고 위험을 넘어선 주인공들은 모든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들이 파헤친 비밀스런 내막은 주인공의 목숨과 맛교환되며 땅속에 다시 묻힌다.

눈치챌 수 있듯이 모험물은 영화의 장르들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먼저 주인공들이 밝혀내고자 하는 고고학의 진실들은 주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에서 시작한다. 보수주의의 주된 특징인 실효성과 지속성 그리고 안정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보적인 주인공들의 비밀 밝히기는 당연히 개인적 체험이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식으로 다시 사라지고 만다. 이들이 찾아가는 유적지들은 언제나 위험한 비밀장치 혹은 수호자들에 의해 보호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엔 실패했던 선배들의 유골이 나뒹구는 게 일반이다. 변화와 침입을 거부하는 유적(遺跡)은 침입한 타자를 죽이거나 자신을 파괴하거나 감춤으로써 이전과 다름 없는 비밀을 유지한다. 진보적인 행동을 일관하던 주인공 역시 결국에는 생명의 보존이 남녀관계의 맺음과 맛물린 내러티브에 의해 가족 이데올로기에 귀속된다.-주인공들의 맺음에서 결혼으로 옮겨간 <미이라>의 경우 이를 확연히 증명한다.- 당연히 극중에서 등장하는 2세들은 <인디아나존스와 최후의 성전>이나 본편 <미이라2>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와 똑 같은 흥미를 가지고 있어 밝히는 자와 감추는 자의 순환구조 영구 반복을 예상케 한다. 즉 앞서 언급한 복제와 부활이 이미지 역시 변화와 연결되지 않는 모험물의 보수구조를 확인시키는 증거인 것이다. <미이라2>의 전략은 이처럼 보수적인 모험물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볼거리와 이야기 양면에서 충실하게 말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매체인 영화는 ‘볼거리’라는 점에서 관객을 유혹한다. 또 개별 영화들은 나름대로의 이야기하기로 관객의 동의를 소원한다. 또 수많은 개봉관을 차지함으로 인해 관객이 접근을 용이하도록 계획한다. <미이라2>가 가진 힘은 시스템과 볼거리와 이야기가 일반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복제에서 그리 멀지 않는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정작 잔잔한 보수주의의 포근함을 더함으로 인해 성립된다. 이를 감싸 안는 규모의 볼거리는 언제 봐도 흥미로운 포장지다. 세상은 개혁을 부르짖어도 언론의 방종과 족쇄에 대한 끊임없는 흑백논쟁처럼 보수는 가만히 머무르는 자의 의지를 장악하기 마련이다. 당신은 그 순환의 은근한 강요에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4 : 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