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미스터리와 소통 -첫째 시간

열혈연구 2001. 5. 23. 14:38
영화는 관객과 소통을 희망한다
-소통 측면에서 바라본 미스터리 영화


이번 주부터 4주에 걸쳐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첫번째로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를 영화와 연결시킬 때 어떤 교차점이 발생하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글은 미스터리 장르에 집중할 것입니다. ‘소통’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맞는 단어겠죠. 그래도 이곳에서는 국적을 달리하며 의미가 조금씩 변하는 약점을 감수하고 소통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와 관객사이의 끊임없는 나눔입니다. 서투른 필력과 짧은 지식이 글을 딱딱하고 지루하게 할까 걱정입니다.다만 여러분과 소통을 희망하는 저의 바람이 전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소통으로 들어가기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人間)’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소통(疏通, communication)한다. 때로는 말과 문자(verbal language)로, 때로는 몸짓과 표정(non-verbal language)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눈다. 그렇게 나눈 각자의 내면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게도, 반대로 공격하고 외면하게도 만든다. 번번이 소통은 자신(送信者, sender)의 생각(message)이 상대(受信者, receiver)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처음 의도에 근접하도록 만드는 설득 작업이 된다.

소통은 ‘공유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communis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소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설득해서 상대방의 생각을 내 생각과 같은 것으로 바꾸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보나 의견을 건네면서 결과적으로 서로간 이해폭을 확대함을 의미한다. 바로 소통은 설득이면서 공유의 힘겨루기다. 이것은 상대만 아닌 나의 변화도 부정하지 않는 교류다. 송신자와 수신자라는 독립체(獨立體)가 소통을 통해 점점 가까워지면서 연합체(聯合體)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를 ‘목적소통(目的疏通, purpose communication)’이라 하자.


영화에서 소통이란

뤼미에르 형제가 그랑카페에서 행한 유료영화상영 최초형태-어두운 공간에 앉은 관객이 영사기에서 쏘아져 스크린에 펼쳐진 착시현상을 바라본다-는 100년을 넘어 지났지만 여전히 유용한 암실과 스크린 그리고 관객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sender)과 일제히 같은 방향을 주시하는 관객(receiver)의 상관관계에서 이전의 관람습관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다름아닌 관객에 반응하지 않는 영화 자체의 견고함이다.

19세기 말엽 영화(榮華)의 끄트머리에 있던 오페라는 영화(映畵)와 비슷한 관람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어둡고 넓은 공연장에 수많은 관객들이 무대를 주시하는 형태 말이다. 오페라와 영화에서 소통의 차이점은 오페라 가수들의 존재에 있다. 그들은 관객의 지루한 숨소리 하나, 훌쩍이는 콧소리 하나에도 반응하는 소통체인 것이다. 관객과 가수의 끊임없는 소통은 내리는 막과 동시에 박수로 폭발하는 감격의 시간을 연출한다. 그래서 실연자(實演者)가 없는 새로운 매체, 영화는 다른 소통의 길을 찾는다.

수없이 반복 공연되는 오페라와 달리, 영화는 새로움을 통한 호기심 자극의 전략을 채택한다. 영화는 ‘신기한 볼거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교차 진화하며 생명력을 키워간다. 물론 영화가 역사를 입어가면서 오페라와 비슷한, 상영과 소비의 반복 경향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는 주된 흐름은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 관객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극장 안 어두운 공간에 자리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은밀히 훔쳐보는 관음자(觀淫者)로 역할 변위를 경험한다. 의도대로 영화는 관객의 존재여부에 상관없이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을 계속하고 익명성을 유지한 관객은 스크린 위에서 벌여지는 행위를 몰래 바라보는 형태를 띤다.

그 단계를 지나면 관객은 주인공 혹은 사건의 흐름에 자신을 동일시(觀客同一視, spectator’s identification) 한다. 관객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암실의 불이 켜질 때까지 스크린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지속적인 목적소통을 경험한다. 즉, 영화에서 관객은 이전의 매체들-‘쌍방향성(interactivity)을 내세우는 현대의 많은 매체들을 포함해-과 같이 상대 혹은 매체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투사체(投射體)와 소통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관객은 관음자의 입장에서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사건들을 관찰하는 한편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고를 예측하거나 따라가며 그 속에 자신을 투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과 소통하는 것이다. 이는 정신 분석학적 입장에서 본 영화 관람의 무의식의 과정 즉, ‘성적 차이를 인지하고(거울 단계) 이어서 언어를 획득하며(상징계로 진입) 마지막으로 자율적인 자아를 획득한다(어머니와 단절)’를 답습한다.

영화는 관객을 보는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 즉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볼 수 있는 관음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동시에 관객과 투사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을 시선의 주체로 구성하면서 보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키고 충족시킨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미스터리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3 :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