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턱시도> 씁쓸한 달콤함

열혈연구 2002. 11. 7. 03:09
<턱시도>
- 씁쓸한 달콤함

한중 합작 영화에 나오던, 더벅머리 총각 성룡은 간곳 없고 이제 말끔한 턱시도를 차려 입은 재키 찬이 찾아왔습니다. 보고 싶어 찾아갔다가 매번 아니다 싶어 돌아오는.. 요즘 성룡은 제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턱시도>가 성룡을 위한 영화라는 아니 성룡의 영화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추석과 설날을 기해 매년 두번씩 찾아오던 그의 홍콩 영화가 이제 이년에 한번씩 할리우드 영화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혼자 나왔건 아님 잠깐 얼굴을 비췄건 간에 ‘성룡의 영화’로 떠올리게 할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동양에서는 그랬다.

혹자는 성룡의 할리우드 입성과 성공을 <캐논볼>의 실패, 그리고 <홍번구>의 성공을 빌어 칠전팔기식의 스타탄생을 읊고, 혹자는 TV 애니메이션에서 메이저 영화 주연을 꿰어차는 그를 일러 장인이라는 성공시대의 틀로 설명한다.

그러나 <턱시도>에서 성룡이 단독 주연으로 올라선 것이 성공하느냐는 덜 중요한 문제이다. 성룡의 할리우드 입성이 연이은 홍콩 감독과 배우들의 할리우드화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이슈로 남아 있다는 자체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그러면서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비난하는 우리의 두 얼굴인 것이다.

잠언 하나. 즐기기 위해선 잊어라.

이 영화가 (적어도 동양인에게)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버디물의 기초단계를 넘어서 단독주연에 올라선 성룡의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얼마나 유사하느냐 이다. 이는 콧수염을 잃은 채플린, 하회탈 같은 웃음의 버튼이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잠언 둘. 즐기기 위해선 기억하라.

<턱시도>는 동양문화와 이를 대표하는 캐릭터로서 성룡 그리고 첩보물의 대명사 (아니 동의어에 가까운)인 007 시리즈에 대한 오마쥬와 패러디가 공존한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더라도 이는 확연하다. 엄청난 능력의 턱시도가 닥터Q의 첨단 장비에서 멀지 않은 것도, 운전기사였던 성룡의 이름이 ‘지미’인 것도 모두 제임스 본드, 살인면허의 그 첩보원의 냄새가 난다. 이것 외에도 괴조음의 이소룡, 채플린을 비꼰 염소수염(평자들은 그를 버스터 키튼에 비교하지만 필자는 그가 채플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초반 택시를 중심으로 하는 액션과 중반 무대 위 노래 신들 그리고 표정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은 확실히 키튼 보다는 채플린을 연상케 한다), 스파이더맨 같은 요소들이 노골적으로 뒤엉켜 있다.

케빈 도노반 감독은 자신의 첫 영화의 빈틈을 이러한 오마주와 패러디 그리고 말장난으로 메우려 한 듯 보인다. 이것들은 제법 귀여운 냄새를 풍기지만, 문제는 이것이 성룡의 영화라는 점이다.

이중 가장 재기 넘치는 것은 바로 오프닝 시퀀스이다. 파란 나뭇잎에 폭포수, 한가로운 자연, 사슴 한마리가 물에 발을 딛고 서 있다. 이처럼 <턱시도>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한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카메라가 사슴의 엉덩이로 천천히 다가서는 듯 싶더니… 사슴의 배설물은 슬며시 시냇물에 희석된다. 카메라는 희석되는 듯 하다 하수가 되고 오물 낀 철조망을 지나 물이 도달하는 곳까지 따라간다. 다름 아닌 생수병이다.

델 블레인(진짜 이름은 딜라일라인 제니퍼 러브 휴잇)은 이론에 충실한 신참 첩보원이다. 그녀는 전설적인 일급 첩보원, 데블린과의 첫 임무에 가슴떨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것은 실수투성이 가짜 데블린, 지미 퉁(성룡)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불리기를 원하는 이름 ‘델 블레인’이 그녀가 희망하는 첩보원 상인 ‘데블린’과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잠언처럼 따르는 첩보 교본의 형상을 데블린에게 투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금지된다. 그녀가 배신(전략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료애가 파국에 달하는 것은 자신의 파트너가 진짜 데블린이 아닌 지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즉 그녀가 데블린의 허상(실은 데블린 조차 턱시도의 허상에 불과하지만)를 쫓았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턱시도>의 기본적인 내러티브는 ‘월터 스트라이더’의 의미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시민 케인>에서 ‘로즈버드’를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형태인데, 이것이 허망하고 씁쓸하기 그지 없다. 미스터리를 형성했던 이유가 지미의 무지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독은 성룡의 영어 억양을 가지고 장난을 한다. 이것은 크리스 카터와 수다를 떨던 <러시 아워>에서 배부를 만큼 먹었던 것인데, 여전히 유효하다 여긴 듯하다. 당연히 ‘월터 스트라이더’의 의미가 밝혀지는 것은 시시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 모르는 이는 지미, 곧 성룡 혼자 였기 때문이다.

<턱시도>에서 성룡은 실망스럽다. 먼지가 풀풀나는 생생한 액션은 더 이상 없다. 그의 풍부한 표정만이 예전의 성룡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에 담긴 문화적 함의, 할리우드에서 성룡의 역학적 구도, 변한 것들에 대한 실망 등 여러가지 생각으로 점철되는 극의 후반부. 지하 비밀 연구소 신은 이 모두를 지우라는 듯 메시지를 전한다.

비밀 연구소에 침투한 블레인과 지미. 컴퓨터의 소스에 접근한 블레인은 배닝이 소금쟁이를 이용해 식수에 바이러스를 투입하려한 비밀을 알아낸다. 전문가인 그녀는 지미에게 이를 설명하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지미는 “좀더 쉽게” “좀더 쉽게”를 반복한다. 블레인의 좀더 쉬운 설명은 끝내 지미를 이해시키고 만다. 이해한 후 그는 사고보다 빠르게 음모를 저지할 몸놀림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 성룡이 어려운 미사어구로 즐거운 영화에 초를 치고, 괴로운 영화에 당의를 입히는 비평가들에게 ‘쉽게’ 말하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성룡은 엉뚱한 잔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20년 전과 같이 웃고 뛰어다닌다. 명절 때 모인 가족들이 세상의 고민을 잊고 서로 즐거운 면만을 찾아 웃는 단 며칠만의 자유처럼, 극장에서 하하하 웃으며 피난처를 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비평가들은 조금 더 쉽게 영화와 관객의 거리를 줄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의 영화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턱시도>는 두 달이나 석 달 뒤에 나오는 게 나을 뻔 했다.

또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