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메멘토] 끝에서 시작으로

열혈연구 2001. 9. 3. 05:35
실은 오늘 밤도 시계를 놓고 왔습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자리에 앉으면 시계를 풀러 놓는데다가 그리고선 잊어버리는 기억력 때문이었죠. 그런 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에 등장하는 레너드는 제게 위안입니다. 겨우 10분짜리 기억력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하는 그이니깐요. 여러분의 기억력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극장에 가서 도전해보세요. 10분 정도의 기억력만 있어도 된답니다. 딱 그만큼만 잊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 쉬웠던 걸까요?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메멘토 (01. 8. 28)
-끝에서 시작으로

@ 사건의 끝

사람을 죽였다. 안경 낀 짧은 머리에 콧수염을 단 남자는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 죽은 채로 남겨진다. 전직 보험수사관인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조금 전 아내를 강간 살해한 범인, 테디(조 판톨리아노)를 총으로 죽였다.

영화는 손에 들려 있는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에서 시작한다. 약품이 조금이라도 빨리 마르기를 소원하는 손짓으로 사진을 팔랑거리나 싶더니 이내 사진은 하얀 테두리 속으로 희미해진다. 그리곤 카메라는 자신이 반대로 돌고 있음을 알아챈 관객들 앞에서 쓰러진 남자의 왼쪽 볼에 닿아 소리를 터트리는 한발의 총성 앞으로 다가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첫번째 장편 <메멘토>를 내 놓은 것은 2000년. 아내를 잃은 사나이의 복수극을 조각 낸 후 거꾸로 짜 맞춰놓은 이 영화는 베니스, 선댄스, 베를린을 비롯해 올해 부천영화제를 지나, 곳곳의 극장 스크린에 걸렸다. 할리우드의 이벤트 영화가 아닌 신인 감독의 영화가 여름의 끝자락이나마 스크린에 걸리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관객을 아니 그보다 배급사와 극장주의 관심을 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이야기도 그쯤에서 시작하자.

테디를 살해하는 첫씬이 끝나면, 옅은 녹색톤의 흑백 실내씬이 이어진다. 레너드는 아내의 죽음 이후 기억이 10분 이상 가지않는 단기기억손실증에 걸렸다. 살인자를 쫓는 그가 선택한 기억 손실의 보완책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몸에 새긴 문신이다. 사람과 장소는 사진으로 찍어 메모를 하고, 중요한 단서는 몸의 구석에 문신으로 심어 놓는 것이다. 여러가지 단서들은 그의 몸 곳곳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왼쪽 가슴만은 남아 있다. 바로 복수의 완성을 표시할 자리이다.

시퀀스(sequence)는 같은 서사 구조로 통합된 몇 개 씬들의 집합을 말한다. 시퀀스는 씬이라는 벽돌을 기반으로 영화라는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과도 같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볼 때 개연성 있는 씬들은 모여 시퀀스라는 하나의 이야기 조각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하나의 시퀀스는 다음 시퀀스의 고리가 되거나 반대편에 서서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게 일반이다. <펄프픽션>으로 새로운 영화의 시작을 알린 타란티노의 재기는 바로 이것을 무너뜨렸다는 것이었다.

<메멘토>는 아내의 복수를 종결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레너드는 거짓말쟁이 테디의 몸에 죽음에 이르는 총알을 박았고, 기억의 조각이 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사건을 완결 지었다. 결과를 알고 원인과 풀이과정을 알아가는 ‘형사 콜롬보’식의 플래쉬 백을 이용하는 영화들 역시 이와 같은 구성을 취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조금 다르다. 겨우 1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주인공의 기억처럼 잘게 쪼갠-혹은 쪼개서 시퀀스를 이룬- 시퀀스들은 스스로 ‘결말을 알고 있어도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 말하며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 사건의 이음매
영화는 크게 두개의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컬러로 이루어진, 시간의 역순으로 짜맞춰진 시퀀스들이 하나의 흐름이고, 나머지는 모텔방에서 시간순으로 나아가는 흑백으로 담은 하나의 시퀀스이다. 앞의 시퀀스들은 레너드의 나레이션을 더해 자신과 관객의 기억력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을 한다. 뒤의 시퀀스는 추리의 과정을 집중하며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각주를 더한다.

레너드의 왼손에는 ‘새미를 기억하라’는 문신이 새겨있다. 보험수사관시절 조사했던 단기기억손실증 환자인 새미의 실패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당시에 레너드는 새미의 병에 대한 진의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는 남편의 진정성을 증명하려 했던 새미 아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철저하지 않는 메모자세에 대한 격언으로 새겨놓은 왼손의 문신은 내러티브의 또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치명성이 그것이다.

레너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통해 테디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레너드의 손에는 J.D가 범인이라고 쓰여있는 문신과 맞아떨어지게 테디의 본명이 존 갬멜이라는 서류가 쥐어 있다. 범인의 차량번호 역시 테디의 것과 일치한다. 이 서류는 누군가를 잃었던 기억으로 인해 동정심으로 자신을 돕고 있다고 사진아래 쓰여 있는 나탈리(캐리 앤 모스)가 준 것이다. 이것은 생채기가 있는 그녀의 얼굴과 함께 일어난 침대의 순간까지만 하더라도 의심할 나위 없는 사건의 해결처럼 보인다.

테디에 관한 서류를 건네준 나탈리의 행동이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레너드의 판단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자신의 메모를 통해 구축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인해 테디의 모든 행동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실제로 테디는 레너드의 자동차를 계속해서 탐내고, 매번 다른 서로 다른 사실을 이야기 한다.

레너드의 기억손실증과 아내의 죽음이라는 기본 설정과 그의 복수라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문제는 구성을 통해 발생하는 몽타쥬이론과도 같다. 부수효과 정도라고 하면 어울릴 이것은 영화가 시간순에 따른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면 나타나지 않았을터다.

테디가 범인이라는 서류를 레너드가 손에 쥐게 된 사건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레너드와 나탈리는 서로 다툰다. 헤어지고, 둘은 카페에서 만난다. 서류를 건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레너드와 다툰 뒤 그의 기억을 재구성할 것을 말하고 실행하는 나탈리의 행동이다. 그녀는 레너드에게 맞은 상처를 테디와 연관된 것으로 바꾸고, 자신의 죽은 애인 지미를 빼놓는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조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레너드를 남기고서 홀연히 등장했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영화가 종반을 향해 감과 동시에 테디와 나탈리 그리고 지미가 레너드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순식간에 드러난다. 마약상인 지미의 돈을 노리는 테디는 레너드의 기억력을 이용했다. 나탈리 역시 그를 이용해 지미의 복수를 마친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는 레너드의 행동이 어디선가 본 연쇄살인범의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채는 순간, 사건의 현장에서 차를 몰아 나오며 기억의 삭제를 태연히 행하는 씬이 이어진다. 애써 이어 놓은 사건의 이음새는 다시 흐트러져야만 한다.


@ 사건에 대한 각주
<메멘토>는 기억에 대한 자문이면서, 믿음에 대한 의심이고, 본능에 대한 변주이기도 하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생명본능(life instinct)은 쾌락과 자기보존본능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흔히 성적욕망, 정도로 알려진 리비도(libido)는 성본능의 발동 기반에 멈추지않고 나아가 생명본능의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욕망으로써 리비도를 바닥에 깔아 놓은 생명본능은 기억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장애를 바탕으로 삼아 살아남는 레너드처럼 새로운 통일체를 창조하고 유지하려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욕망’을 가리키는 라틴어인 리비도의 범위를 생명본능이나, 융에게서처럼 모든 욕망의 근저에 놓인 에너지라고 확대해 놓으면 레너드의 행동을 양식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메모로 인해 단편화된 채 겨우 남겨 있는 레너드의 기억이 실제로 ‘아내의 복수’라는 대전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닌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마지막 씬은 영화전체를 플래쉬 백처럼 되짚어 재정리하도록 한다. <메멘토>, 자신처럼 기억은 현재를 이루는 조각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는 순간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현재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레너드가 단기기억손실증에 걸린 것은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더하자면, 그에게 있어 아내는 남근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 레너드는 정체과 육체가 거세되었다고 가정하고 하나씩 맞춰보자.

현재의 그는 스스로가 결정의 홀을 쥐고 있던 보험수사관의 자리를 놓은 상태이다. 자신의 서랍 속에 있는 총이 누구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나탈리와 무난한 하룻밤과 또 불러들인 창녀에게 부탁한 것이 기껏 자신이 잠들 때 욕실문을 쾅 닫으라는 것뿐이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 역시 모두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서일 뿐이다.

그러던 그가 살아 남는 것은 성적본능에 한정하지 않고 생명본능으로 나아간다는 리비도에 대한 해석과 일치한다. 그는 거세된 상태이지만 아내의 복수에 기반한 리비도를 통해 새로운 통일체를 구성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은 철저한 실행체로 탈바꿈한다.

한 시퀀스를-<메멘토>에서 하나의 씨퀀스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는 앞과 뒤를 연결하는 또 다른 시퀀스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살펴보자. 레너드는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차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내가 왜 달리고 있지?’라고 자문하는 순간, 저편에 남자 하나 역시 달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쫓고 있나?’라고 생각하고선, 그는 상대편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몇 걸음 달려가기도 전에 상대편의 총에서 불꽃이 튀어나온다. 레너드는 ‘내가 쫓기고 있었구나!’하며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더 빨리 사라지는 기억을 유쾌한 설정으로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거세된 실행체로서 레너드를 명백해 보여준다. 이 시퀀스에다 총에 의해 쫓기고 결국에는 입장을 변모시키는 다음 시퀀스를 연결하면, 거세되었고 이를 극복하는 레너드의 실행이 눈에 확연하다. 하지만 레너드의 행동양식은 한번의 절차를 더 밟는다.

라캉에 의하면 남성의 거세 공포는 자연상태와 그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의 사이에 발생하는 단절에 대한 불안과도 같다. 레너드의 경우에 비추어 말하면, 그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사진과 메모 그리고 문신을 통해 표현되면서 틈새가 생긴다 할 수 있다. 레너드는 이 틈새를 메우기 위해 자신의 짧은 기억력을 이용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지워, 아내의 복수를 향한 영겁회귀를 반복한다. 거세 공포를 극복한 순간에 다시 거세된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메멘토>는 구성의 재기(才氣)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이 가려지는 묘한 경험을 선물한다. 끊임없이 결과를 기억하며 원인을 파헤쳐가는 짜임새를 따라가기 위해 스토리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의 과문이 원인이겠지만, 이른바 ‘예술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보기’를 통해 새로운 ‘읽기’가 가능해 보인다. 물론 스토리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육신처럼 차갑게 마른 가이 피어스의 연기도, 조용히 바라보다 자연스레 합쳐지는 윌리 파이스터의 촬영도 한몫을 했을 테다. 영화의 매력은 공동작업물로써 다중반향을 낳는 힘이다. 그 힘에 오늘도 빠져든다.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리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궤케 하느니라. (전 9 : 11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