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카드>
-새롭지 않음의 미학
글을 대충 써 놓았던 오늘 낮, 우연히 김유진 감독이 등장한 TV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와일드 카드>와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했던 그의 대답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는 관객의 것이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은 “영화를 보다가 전화 받지 않고, 화장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돈을 내고 왔으면 본전 생각 않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죠. 설명 불가능한 영화를 만들어 놓고 선문답을 늘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일부 감독들에 비해 얼마나 솔직한 욕망입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새삼스레 영화가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밀려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된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참은 새롭다는 이유로 올라오고, 베테랑은 낡았다는 까닭으로 물러서야 한다. 99년 <약속>으로 흥행성공을 거뒀던 김유진 감독은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말도 안 되는 단점 때문인지, 4년 만에야 신작 <와일드 카드>를 내어 놓았다. 영화의 분위기는 깡패가 등장하는 말랑한 사랑 이야기에서 연쇄 살인 퍽치기를 잡는 단단한 형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지만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국경일에나 한번씩 한다고 아내에게 ‘국경일’란 별명을 들은 김 반장은 한창 때 전국 1위의 검거율을 자랑하던 형사였다. ‘출근할 때 하나, 퇴근할 때 둘’을 잡아 넣던 김 반장도 이제 조무래기 하나 잡으려다 다리가 부러지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김 반장은 오영달과 방제수를 비롯한 수사반을 지휘하며 범인들을 잡아내고야 만다. 범인 검거를 위해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추리, 밤을 새는 끈기, 놈을 쓰러뜨리는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조율하는 지휘력이다.
<와일드 카드>는 최근 우리 영화 완성도의 평균점수를 올려놓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년에 연달아 등장한 조폭 영화들이 놀라운 흥행 쌍곡선을 그으면서도 비난을 받았던 이유였던 완성도가 <살인의 추억>과 더불어 형사 영화에서 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감독의 연출력, 작가의 필력, 배우의 연기력이 어울린 <와일드 카드>는 근래 보기 드문 정공법 영화이다. 여기에는 은밀한 암시나 모호한 결말, 양시론적 배경의 흔적은 없다. 당연히 인물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복잡한 플래쉬백(flash back)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누벨바그 이전에 태어나 포터(Edwin S. Porter)나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의 피를 받은 고전적(classic)인 감독의 재능이 담백한 형사들과 끔찍한 범인들과 어울려 빛을 발할 뿐이다.
영화는 시종 시간의 순을 쫓는 선형(liner) 구조를 하고 있다. 김 감독은 이 같은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정사/역사(Shot and Reverse Shot)를 이용한다. 날아오는 주먹 쇼트와 맞는 얼굴 쇼트를 잇는 방식을 가리키는 이것은 <와일드 카드>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표현 양식이다.
먼저 한 씬(scene)을 보자. 잠복하는 두 형사. 오 형사가 잠깐 자릴 비운 사이 방 형사가 퍽치기 한 녀석을 잡았다. 그러나 그 퍽치기는 관내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라 과천서의 형사가 쫓고 있던 녀석이었다. 잡아 놓은 퍽치기를 놓고 방 형사와 과천 형사가 티격태격 하고 있을 때 오 형사가 돌아온다. 과천 형사의 부탁을 받아 녀석을 넘겨주라고 오 형사가 방 형사에게 권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은 오 형사가 방 형사에게 매달려 부탁하거나 우격다짐으로 빼앗으려는 행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를 간단히 정사/역사로 담아낸다. 먼저 카메라는 오, 방 형사 각각을 바스트, 원 쇼트(bust shot : 가슴 정도에서 머리까지를 잡는 쇼트, one shot : 프레임 안에 한 명의 인물만 잡는 쇼트)로 잡는다. 또 시선은 인물의 시점에 따른 쇼트(P.O.V : point of view) 를 이용하고 있다.
방 형사를 바라보는 오 형사.(대사 없음) -> 안 된다고 늘어 놓는 방 형사. -> 조금 바뀐 애절한 표정의 오 형사.(역시 대사 없음) -> 또 다시 안 된다며 새로운 이유를 늘어 놓는 방 형사. -> 그리고 또 다른 오 형사의 표정 -> 이에 당혹스러워 하다가 끝내 수락하고 마는 방 형사.
별다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 형사의 표정을 몇 번 보여주고, 이에 반응하는 방 형사의 모습을 담아낸 것 뿐이다. 대신 표정을 강조하는 듯, 카메라는 오 형사에게 점점 다가가고 기세가 꺾이는 방 형사에게선 멀어지고 있다. 김 감독은 오 형사의 너절한 대사 하나 없이 방 형사를 설득하는 순간을 정사/역사 배치만으로 아주 정확히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효과적인 편집도 빼놓을 수 없다. 첫번째 살인 사건과 수사반의 출동 씬의 연결은 유연한 편집의 실례로 손색이 없다. 김 감독은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씬들의 연결을 통해 관객에게 범행과 수사의 끔찍한 인연을 ‘가죽가방’ 하나로 유리한 자리 선점에 성공한다.
사건의 주범인 4인조 퍽치기가 암달러상인 여자를 쇠구슬로 때려 쓰러뜨리고 돈을 빼앗아간 지하철 역사 복도이다. 범인들이 떠나가고 지하철 기둥에 기대듯 주저 앉은 여자는 억울한 듯한 손길로 빈 가방을 움켜쥐며 품으로 끌어당긴다. 이때 카메라는 가방을 움켜잡는 그녀의 손을 클로즈업(close-up)한다. 이어 흰 장갑을 낀 손이 그녀의 손을 가방에서 떼어놓으려 한다. 꽉 쥐고 있는 손을 풀어 가방을 빼낼 때 즈음. 카메라는 뒤로 물러난다. 검시반과 수사반이 살인 사건 현장에 와 있다.
시간의 벽이 자리한 서로 다른 두 씬을 가방과 손의 클로즈업 만으로 그녀의 죽음 그리고 김 반장팀의 소개까지 순식간에 담아낸다. 이 같은 효과적인 씬의 연결로 <와일드 카드>는 114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동안 네댓 편에 이르는 '경찰청 사람들'과 각각 한 편 씩의 '로맨틱 코메디'와 '조폭 영화'를 담아내면서도 설긴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와일드 카드>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은 작가인 이만희이다. 유명한 연극 각본가인 이 작가는 이미 김 감독과 발을 맞춰 <약속>의 성공을 이룬바 있다.(이민용 감독의 <보리울의 여름>도 그의 작품이다) 오랜 기간의 조사를 통해 뽑아낸 생생한 속어들을 비롯해 사건 상황과 인물 심리를 날카롭게 반영한 대사들은 형사들을 스크린 위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기와 같다.
관내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경찰서는 상(喪)을 맞은 상가집과 같다는 비유나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는 김 반장 말의 뜻이 궁금할 때 즈음 칼을 대신 맞으며 동료의 생명을 구한 강칠순의 헌신이 등장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칼 앞에서 비겁해지는 강 형사의 모습을 미리 반복해서 보여주었고, 오 형사와 술자리에서 형사의 비장의 무기는 결국, 이겨내야 하는 “몸뚱아리, 지 죽을 줄 모르고 덤벼드는 몸뚱아리다.”고 말하며 감상을 증폭시킨다.
감독의 연출력과 작가의 필력을 살려내는 최후의 열쇠는 배우의 연기력이다. 특히 오 형사, 정재영의 사람냄새 나는 연기는 가족에겐 따뜻한 가장, 범죄 앞엔 냉철한 형사, 수사팀에선 가슴 넓은 동료 등 넓은 오지랖에서 보이기 쉬운 작위성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또 ‘불 좀 꺼주세요’에서 보여준 1인 8역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선보이듯 한 도상춘 역의 이도경 역시 과도함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무거울 뻔했던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반면 퍽치기의 대장 격인 노재봉 역의 이동규와 방 형사를 맡은 양동근은 의욕 넘치는 형사와 냉혹한 살인자라는 역할에 있어서 정확했지만 자신들의 연기가 갖은 한계에 봉착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시종 서늘한 표정을 짓는 이동규는 서늘한 기운을 보이기에 충분했음에도 가벼운 발성으로 인해 호흡을 놓친 면이 없지 않다. 또 양동근의 넉살 좋은 연기는 전형으로 자리잡은 듯 해 종종 흐름을 거스른다. 용의자의 눈물, 콧물을 다 뽑아낸 누나와 계란 이야기 같은 곳에서는 코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 연기는 <와일드 카드>를 이끄는 힘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오랜만에 고전적인 영화를 마주하고 있다. 이는 정석에 가까워 고리타분하다기 보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준다고 하는 게 옳다. 새로움은 옛스러움의 바탕에서만 신선함을 찾을 수 있다. 근본 없는 새것은 전위(前衛, avant-garde)에 그칠 뿐이다. 오영달과 김 반장 등 헌 사람들은 이제 방제수나 강나나 같은 새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늙기 전에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늙은 이들이 젊었을 때 해 놓은 것들을 토양으로 한다. 몸을 던진 김 반장과 강 형사가 있었기에 방제수가 노재봉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신인 감독의 배출만큼 중요한 것은 기성 감독의 역량을 묵혀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 영화의 전통은 개선과 개혁의 조화를 통해 쌓아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 : 26)
-새롭지 않음의 미학
글을 대충 써 놓았던 오늘 낮, 우연히 김유진 감독이 등장한 TV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와일드 카드>와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했던 그의 대답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는 관객의 것이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은 “영화를 보다가 전화 받지 않고, 화장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돈을 내고 왔으면 본전 생각 않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죠. 설명 불가능한 영화를 만들어 놓고 선문답을 늘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일부 감독들에 비해 얼마나 솔직한 욕망입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새삼스레 영화가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밀려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된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참은 새롭다는 이유로 올라오고, 베테랑은 낡았다는 까닭으로 물러서야 한다. 99년 <약속>으로 흥행성공을 거뒀던 김유진 감독은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말도 안 되는 단점 때문인지, 4년 만에야 신작 <와일드 카드>를 내어 놓았다. 영화의 분위기는 깡패가 등장하는 말랑한 사랑 이야기에서 연쇄 살인 퍽치기를 잡는 단단한 형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지만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국경일에나 한번씩 한다고 아내에게 ‘국경일’란 별명을 들은 김 반장은 한창 때 전국 1위의 검거율을 자랑하던 형사였다. ‘출근할 때 하나, 퇴근할 때 둘’을 잡아 넣던 김 반장도 이제 조무래기 하나 잡으려다 다리가 부러지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김 반장은 오영달과 방제수를 비롯한 수사반을 지휘하며 범인들을 잡아내고야 만다. 범인 검거를 위해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추리, 밤을 새는 끈기, 놈을 쓰러뜨리는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조율하는 지휘력이다.
<와일드 카드>는 최근 우리 영화 완성도의 평균점수를 올려놓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년에 연달아 등장한 조폭 영화들이 놀라운 흥행 쌍곡선을 그으면서도 비난을 받았던 이유였던 완성도가 <살인의 추억>과 더불어 형사 영화에서 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감독의 연출력, 작가의 필력, 배우의 연기력이 어울린 <와일드 카드>는 근래 보기 드문 정공법 영화이다. 여기에는 은밀한 암시나 모호한 결말, 양시론적 배경의 흔적은 없다. 당연히 인물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복잡한 플래쉬백(flash back)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누벨바그 이전에 태어나 포터(Edwin S. Porter)나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의 피를 받은 고전적(classic)인 감독의 재능이 담백한 형사들과 끔찍한 범인들과 어울려 빛을 발할 뿐이다.
영화는 시종 시간의 순을 쫓는 선형(liner) 구조를 하고 있다. 김 감독은 이 같은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정사/역사(Shot and Reverse Shot)를 이용한다. 날아오는 주먹 쇼트와 맞는 얼굴 쇼트를 잇는 방식을 가리키는 이것은 <와일드 카드>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표현 양식이다.
먼저 한 씬(scene)을 보자. 잠복하는 두 형사. 오 형사가 잠깐 자릴 비운 사이 방 형사가 퍽치기 한 녀석을 잡았다. 그러나 그 퍽치기는 관내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라 과천서의 형사가 쫓고 있던 녀석이었다. 잡아 놓은 퍽치기를 놓고 방 형사와 과천 형사가 티격태격 하고 있을 때 오 형사가 돌아온다. 과천 형사의 부탁을 받아 녀석을 넘겨주라고 오 형사가 방 형사에게 권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은 오 형사가 방 형사에게 매달려 부탁하거나 우격다짐으로 빼앗으려는 행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를 간단히 정사/역사로 담아낸다. 먼저 카메라는 오, 방 형사 각각을 바스트, 원 쇼트(bust shot : 가슴 정도에서 머리까지를 잡는 쇼트, one shot : 프레임 안에 한 명의 인물만 잡는 쇼트)로 잡는다. 또 시선은 인물의 시점에 따른 쇼트(P.O.V : point of view) 를 이용하고 있다.
방 형사를 바라보는 오 형사.(대사 없음) -> 안 된다고 늘어 놓는 방 형사. -> 조금 바뀐 애절한 표정의 오 형사.(역시 대사 없음) -> 또 다시 안 된다며 새로운 이유를 늘어 놓는 방 형사. -> 그리고 또 다른 오 형사의 표정 -> 이에 당혹스러워 하다가 끝내 수락하고 마는 방 형사.
별다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 형사의 표정을 몇 번 보여주고, 이에 반응하는 방 형사의 모습을 담아낸 것 뿐이다. 대신 표정을 강조하는 듯, 카메라는 오 형사에게 점점 다가가고 기세가 꺾이는 방 형사에게선 멀어지고 있다. 김 감독은 오 형사의 너절한 대사 하나 없이 방 형사를 설득하는 순간을 정사/역사 배치만으로 아주 정확히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효과적인 편집도 빼놓을 수 없다. 첫번째 살인 사건과 수사반의 출동 씬의 연결은 유연한 편집의 실례로 손색이 없다. 김 감독은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씬들의 연결을 통해 관객에게 범행과 수사의 끔찍한 인연을 ‘가죽가방’ 하나로 유리한 자리 선점에 성공한다.
사건의 주범인 4인조 퍽치기가 암달러상인 여자를 쇠구슬로 때려 쓰러뜨리고 돈을 빼앗아간 지하철 역사 복도이다. 범인들이 떠나가고 지하철 기둥에 기대듯 주저 앉은 여자는 억울한 듯한 손길로 빈 가방을 움켜쥐며 품으로 끌어당긴다. 이때 카메라는 가방을 움켜잡는 그녀의 손을 클로즈업(close-up)한다. 이어 흰 장갑을 낀 손이 그녀의 손을 가방에서 떼어놓으려 한다. 꽉 쥐고 있는 손을 풀어 가방을 빼낼 때 즈음. 카메라는 뒤로 물러난다. 검시반과 수사반이 살인 사건 현장에 와 있다.
시간의 벽이 자리한 서로 다른 두 씬을 가방과 손의 클로즈업 만으로 그녀의 죽음 그리고 김 반장팀의 소개까지 순식간에 담아낸다. 이 같은 효과적인 씬의 연결로 <와일드 카드>는 114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동안 네댓 편에 이르는 '경찰청 사람들'과 각각 한 편 씩의 '로맨틱 코메디'와 '조폭 영화'를 담아내면서도 설긴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와일드 카드>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은 작가인 이만희이다. 유명한 연극 각본가인 이 작가는 이미 김 감독과 발을 맞춰 <약속>의 성공을 이룬바 있다.(이민용 감독의 <보리울의 여름>도 그의 작품이다) 오랜 기간의 조사를 통해 뽑아낸 생생한 속어들을 비롯해 사건 상황과 인물 심리를 날카롭게 반영한 대사들은 형사들을 스크린 위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기와 같다.
관내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경찰서는 상(喪)을 맞은 상가집과 같다는 비유나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는 김 반장 말의 뜻이 궁금할 때 즈음 칼을 대신 맞으며 동료의 생명을 구한 강칠순의 헌신이 등장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칼 앞에서 비겁해지는 강 형사의 모습을 미리 반복해서 보여주었고, 오 형사와 술자리에서 형사의 비장의 무기는 결국, 이겨내야 하는 “몸뚱아리, 지 죽을 줄 모르고 덤벼드는 몸뚱아리다.”고 말하며 감상을 증폭시킨다.
감독의 연출력과 작가의 필력을 살려내는 최후의 열쇠는 배우의 연기력이다. 특히 오 형사, 정재영의 사람냄새 나는 연기는 가족에겐 따뜻한 가장, 범죄 앞엔 냉철한 형사, 수사팀에선 가슴 넓은 동료 등 넓은 오지랖에서 보이기 쉬운 작위성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또 ‘불 좀 꺼주세요’에서 보여준 1인 8역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선보이듯 한 도상춘 역의 이도경 역시 과도함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무거울 뻔했던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반면 퍽치기의 대장 격인 노재봉 역의 이동규와 방 형사를 맡은 양동근은 의욕 넘치는 형사와 냉혹한 살인자라는 역할에 있어서 정확했지만 자신들의 연기가 갖은 한계에 봉착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시종 서늘한 표정을 짓는 이동규는 서늘한 기운을 보이기에 충분했음에도 가벼운 발성으로 인해 호흡을 놓친 면이 없지 않다. 또 양동근의 넉살 좋은 연기는 전형으로 자리잡은 듯 해 종종 흐름을 거스른다. 용의자의 눈물, 콧물을 다 뽑아낸 누나와 계란 이야기 같은 곳에서는 코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 연기는 <와일드 카드>를 이끄는 힘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오랜만에 고전적인 영화를 마주하고 있다. 이는 정석에 가까워 고리타분하다기 보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준다고 하는 게 옳다. 새로움은 옛스러움의 바탕에서만 신선함을 찾을 수 있다. 근본 없는 새것은 전위(前衛, avant-garde)에 그칠 뿐이다. 오영달과 김 반장 등 헌 사람들은 이제 방제수나 강나나 같은 새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늙기 전에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늙은 이들이 젊었을 때 해 놓은 것들을 토양으로 한다. 몸을 던진 김 반장과 강 형사가 있었기에 방제수가 노재봉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신인 감독의 배출만큼 중요한 것은 기성 감독의 역량을 묵혀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 영화의 전통은 개선과 개혁의 조화를 통해 쌓아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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