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2
- 피의 문제
미국의 이라크 무력 침공은 부시의 종전 선언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부숴놓은 것에 대한 복구문제, 즉 돈 문제로 점철되어 있는 사후 이라크 문제는 열강들의 이권 다툼으로 더러운 냄새를 풍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경제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인종과 종교 문제로 보이는 이번 전쟁은 <엑스맨2>를 보는 또 하나의 안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영화가 힘이 모자라더라도, 역시 보기 나름입니다.
마블 코믹스를 원전으로 하는 <엑스맨> 시리즈는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구조가 그 핵심이다. 전편은 돌연변이 격리 법안 상정의 위기 앞에서 인간을 돌연변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매그니토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비에 박사가 대립했다. 겉으로는 돌연변이 대 돌연변이 구조이지만, 법안 상정을 지지하는 인간과 같은 맥락인 돌연변이 측과 온건한 인간 측과 뜻을 같이하는 돌연변이 측이 맞서고 있음으로 인해 결국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리전 형상을 띠고 있었다.
달라 보이지만 <엑스맨2>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돌연변이 격리 법의 극단적 지지자인 스트라이커 장군이 돌연변이 몰살을 추진하고 이에 돌연 변이측이 대항과 반격을 한다. ‘한가지 법안을 두고 맛서는 두 세력’이라는 같은 틀이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으로서는 여전히 울버린이 주연의 자리를 꿰어차고 있어 보이지만 , <엑스맨2>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은 미스틱과 아이스맨이다. 이 둘은 혈통과 정체성을 둘러싼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과 고민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편의 마지막은 켈리 상원의원으로 변신한 미스틱의 모습이었다. 법안 지지자였던 그의 역할은 스트라이커 장군에게로 넘어 왔다. 이번에도 미스틱은 수많은 형태로 변신한다. 스트라이커와 그의 데스스트라이크, 울버린과 베드 씬까지 넘보는 진으로 변신까지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종횡무진이다. 법안 상정 저지, 매그니토 탈출, 세레브로 2 프로젝트 입수 그리고 제이슨의 환각 격파 등 거의 모든 주요 임무는 모두 미스틱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스틱의 능력이 ‘목소리와 행동까지 베낄 수 있음’이라는 점이다. 미스틱은 자신의 형질을 버리고 상대의 것을 드러냄으로써 변화를 꿈꾸면서 유지를 희망하는 인간의 양면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결코 그녀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아 이상(ego-ideal : 사람이 동일시하는 모델)을 품고 살면서도 실재로는 ‘개성’이라는 정의 불가능한 존재론(ontology)를 지향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융의 이론처럼 아니마(anima : 남성의 심리 중 여성적 측면)와 아니무스(animus : 여성의 심리 중 남성적인 측면)를 이해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 미스틱은 여성과 남성, 돌연변이와 인간의 벽을 넘나들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정체성을 부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가 막힌 사건의 해결책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아이스맨은 별다른 일을 해내지 못한다. 대신 그의 존재만으로 돌연변이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서는 잠재적 초능력이 유전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되나) 돌연변이는 ‘조상의 계통에 없었던 새로운 형질이 갑자기 생물체에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 녀석은 돌연변이 같은 놈이야~”라는 말은 조상의 DNA를 물려 받은 유전적 공통점을 가지지 않은, 다시 말해 “내 핏줄이 아니다”라는 부정과 다름 없다.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 후, 아이스맨은 부모에게 기숙사가 있는 영재 학교에 다닌다고 속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스트라이커에게 학교가 공격 당하자 피난처로 선정된 그의 집에서 부모와 동생 앞에 진실을 털어놓게 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 것은 온도를 낮추는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라는 아이스맨의 고백에 부모가 가슴으로 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 되려 적이 침입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동생의 행동이다.
아이스맨 집 씬의 첫번째 컷은 파이로의 시선을 통해 비친 가족 사진이다. 초능력을 발견하기 전 단란했던 가족의 기억을 담아 놓은 사진은 아이스맨이 얼린 커피처럼 이미 버림 받은 것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돌연변이로 돌아온 아들의 존재를 부인한다. 여기에 못을 박는 것은 동생의 행동이다.
형제 살해의 역사는 인류의 탄생과 거의 때를 같이한다. 최초의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은 형이 아우를 돌로 쳐 죽임으로써 깨어지고 말았다. 집을 포위한 경찰, 탈출을 시도하는 돌연변이들 그리고 윗 층 창가에서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동생의 시선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금언을 부정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이스맨과 같은 인류이면서도 공존을 거부당한 돌연변이들의 투쟁은 같은 핏줄인 셈이다.
<엑스맨2>는 초능력을 통한 인류 구원의 메시지 같은 이전 초인류 영화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존재에 대한 고민을 장착했다. 울버린이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라이커 장군의 비밀 계획의 전모가 드러났고 개조된 돌연변이라는 실체가 밝혀진 이상, 진이 세상을 났고 사이클롭스와 삼각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사라진 이상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만 움켜쥐는 울버린이 핵심일 이유가 없다. 번잡한 이야기와 힘 빠지는 결말을 캐릭터의 볼거리로 덮으려 애쓰는 이 시리즈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매그니토에게로 돌아선 파이로, 그만이 뜨거운 부활의 열쇠로 보인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feast : 진수성찬)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 : 1)
- 피의 문제
미국의 이라크 무력 침공은 부시의 종전 선언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부숴놓은 것에 대한 복구문제, 즉 돈 문제로 점철되어 있는 사후 이라크 문제는 열강들의 이권 다툼으로 더러운 냄새를 풍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경제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인종과 종교 문제로 보이는 이번 전쟁은 <엑스맨2>를 보는 또 하나의 안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영화가 힘이 모자라더라도, 역시 보기 나름입니다.
마블 코믹스를 원전으로 하는 <엑스맨> 시리즈는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구조가 그 핵심이다. 전편은 돌연변이 격리 법안 상정의 위기 앞에서 인간을 돌연변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매그니토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비에 박사가 대립했다. 겉으로는 돌연변이 대 돌연변이 구조이지만, 법안 상정을 지지하는 인간과 같은 맥락인 돌연변이 측과 온건한 인간 측과 뜻을 같이하는 돌연변이 측이 맞서고 있음으로 인해 결국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리전 형상을 띠고 있었다.
달라 보이지만 <엑스맨2>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돌연변이 격리 법의 극단적 지지자인 스트라이커 장군이 돌연변이 몰살을 추진하고 이에 돌연 변이측이 대항과 반격을 한다. ‘한가지 법안을 두고 맛서는 두 세력’이라는 같은 틀이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으로서는 여전히 울버린이 주연의 자리를 꿰어차고 있어 보이지만 , <엑스맨2>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은 미스틱과 아이스맨이다. 이 둘은 혈통과 정체성을 둘러싼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과 고민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편의 마지막은 켈리 상원의원으로 변신한 미스틱의 모습이었다. 법안 지지자였던 그의 역할은 스트라이커 장군에게로 넘어 왔다. 이번에도 미스틱은 수많은 형태로 변신한다. 스트라이커와 그의 데스스트라이크, 울버린과 베드 씬까지 넘보는 진으로 변신까지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종횡무진이다. 법안 상정 저지, 매그니토 탈출, 세레브로 2 프로젝트 입수 그리고 제이슨의 환각 격파 등 거의 모든 주요 임무는 모두 미스틱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스틱의 능력이 ‘목소리와 행동까지 베낄 수 있음’이라는 점이다. 미스틱은 자신의 형질을 버리고 상대의 것을 드러냄으로써 변화를 꿈꾸면서 유지를 희망하는 인간의 양면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결코 그녀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아 이상(ego-ideal : 사람이 동일시하는 모델)을 품고 살면서도 실재로는 ‘개성’이라는 정의 불가능한 존재론(ontology)를 지향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융의 이론처럼 아니마(anima : 남성의 심리 중 여성적 측면)와 아니무스(animus : 여성의 심리 중 남성적인 측면)를 이해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 미스틱은 여성과 남성, 돌연변이와 인간의 벽을 넘나들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정체성을 부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가 막힌 사건의 해결책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아이스맨은 별다른 일을 해내지 못한다. 대신 그의 존재만으로 돌연변이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서는 잠재적 초능력이 유전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되나) 돌연변이는 ‘조상의 계통에 없었던 새로운 형질이 갑자기 생물체에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 녀석은 돌연변이 같은 놈이야~”라는 말은 조상의 DNA를 물려 받은 유전적 공통점을 가지지 않은, 다시 말해 “내 핏줄이 아니다”라는 부정과 다름 없다.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 후, 아이스맨은 부모에게 기숙사가 있는 영재 학교에 다닌다고 속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스트라이커에게 학교가 공격 당하자 피난처로 선정된 그의 집에서 부모와 동생 앞에 진실을 털어놓게 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 것은 온도를 낮추는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라는 아이스맨의 고백에 부모가 가슴으로 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 되려 적이 침입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동생의 행동이다.
아이스맨 집 씬의 첫번째 컷은 파이로의 시선을 통해 비친 가족 사진이다. 초능력을 발견하기 전 단란했던 가족의 기억을 담아 놓은 사진은 아이스맨이 얼린 커피처럼 이미 버림 받은 것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돌연변이로 돌아온 아들의 존재를 부인한다. 여기에 못을 박는 것은 동생의 행동이다.
형제 살해의 역사는 인류의 탄생과 거의 때를 같이한다. 최초의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은 형이 아우를 돌로 쳐 죽임으로써 깨어지고 말았다. 집을 포위한 경찰, 탈출을 시도하는 돌연변이들 그리고 윗 층 창가에서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동생의 시선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금언을 부정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이스맨과 같은 인류이면서도 공존을 거부당한 돌연변이들의 투쟁은 같은 핏줄인 셈이다.
<엑스맨2>는 초능력을 통한 인류 구원의 메시지 같은 이전 초인류 영화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존재에 대한 고민을 장착했다. 울버린이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라이커 장군의 비밀 계획의 전모가 드러났고 개조된 돌연변이라는 실체가 밝혀진 이상, 진이 세상을 났고 사이클롭스와 삼각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사라진 이상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만 움켜쥐는 울버린이 핵심일 이유가 없다. 번잡한 이야기와 힘 빠지는 결말을 캐릭터의 볼거리로 덮으려 애쓰는 이 시리즈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매그니토에게로 돌아선 파이로, 그만이 뜨거운 부활의 열쇠로 보인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feast : 진수성찬)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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