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뮤지컬이 뒤섞인 디즈니표 영화의 결정판.
감독 : 케빈 리마
상영시간 : 1시간 48분
개봉일 :
출연 : 에이미 아담스, 패트릭 뎀시, 제임스 마스던, 수잔 서랜든 등
상대함의 즐거움
거문고의 대가였던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줄을 끊고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와 『열자(列子)』에 수록된 ‘백아절현(伯牙絶絃)’에 얽힌 고사다. 옛 선현들은 백아와 종자기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상대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사기(史記)』에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라는 문장이 있다. «선비(군인)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다. 단짝의 소중함은 영화 속에서도 매한가지다.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델마와 루이스, 칠수와 만수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때때로 맞선 적을 통해 오히려 잘 드러나기도 한다. 역사의 핵심적인 사건들에는 언제나 쟁쟁한 맞수들이 자리하고 있다. 유방과 한우, 한니발과 스키피오,
동화와 현실
동화 속 왕국 안달라시아에 사는 아가씨 지젤은 오늘도 백마 탄 왕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짓말처럼, 왕자 에드워드가 나타나 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해내고,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이튿날, 사악한 여왕은 궁전에 들어오는 지젤을 꾀어낸다. 우물에 빠진 지젤이 정신을 차린 곳은 맨하탄 중심가, 그것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다.
지젤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빨간두건>, <잠자는 숲속의 미녀> 그리고 <미녀와 야수>까지 디즈니에서 한번쯤 제작된 적이 있는 동화 속 여주인공의 종합판이다. 낙천적인 그녀는 안달라시아와 뉴욕, 어느 곳에서도 한결같다. 감독은 두 세계를 각각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나누어 연출했다. 왕자님과 마법이 있는 상상의 안달라시아와 노숙자와 이혼 소송이 있는 현실의 뉴욕을 구분하는 그만의 방법이다. 두 세계의 차이는 지젤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에드워드가 괴물을 무찌르던 왕자님인 반면 로버트는 이혼 전문 변호사인 식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들
< 슈렉 >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꼼으로써(parody) 평단과 흥행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 Il était une fois >가 세운 전략은 디즈니에 대한 헌정(hommage)이다. 캐릭터의 구성은 물론, 자잘하게 발생하는 사건들 사이 사이에 엿보이는 디즈니의 인장은 제법 흥미롭다. 디즈니표 동화(실은 영화)라는 노골적인 고백은 묘한 효과를 낳는다. 팍팍한 현실을 대변하는 뉴욕에서 조차 뭔가 행복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다. 이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에서 시작해 애니메이션 -> 실사 -> 동화로 변환하는 영화의 구성과 맞물려 다층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 Il était une fois >에는 운명의 단짝(연인)만 있고 진정한 맞수가 없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사랑의 결실은 충분히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여왕의 악랄함은 지젤의 낙천성에 턱없이 못 미쳐서 주인공의 시련이 그다지 애처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짝과 맞수는 자신을 비춰보는 하나의 거울이다. < Il était une fois >의 거울은 한쪽이 덜 닦여 흐릿한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젤 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의 반짝거리는 재능은 한 번쯤 볼만하다. 행복한 결말에 기분이 제법 좋아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