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드리븐] 몬다는 것과 몰린다는 것의 차이
열혈연구
2001. 8. 6. 04:01
레니 할린의 새 영화입니다. <다이하드2>와 <클리프행어>, <딥블루씨> 등을 통해 ‘긴장감’에 대한 일가견을 보여준 감독입니다. 물론 <나이트메어4>나 <컷스로트 아일랜드>, <롱키스 굿나잇>같은 우스운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덜컥이는 내용이라도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속도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생각입니다. 숨을 커다랗게 들이 마시면서 그냥 뛰어드는 거죠. 마지막 여름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드리븐 (01. 6.14)
-몬다는 것과 몰린다는 것의 차이
@힘의 경쟁
모나코는 인구 3만2000명에 면적이 겨우 1.95㎢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소국이다. 카지노와 그레이스 캘리로 잘 알려진 이 나라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다름아닌 F1(Formula one)이다. 인접한 깐느가 축제를 마친 것에 멀지 않은 얼마 후면, 스멀스멀 밀려드는 F1의 열기는 이 도시국가를 순식간에 변모시킨다. 나라의 거의 모든 도로를 이은 3.328km의 레이스.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얽힌 2차선의 도로를 22명의 레이서가 평균시속 110km/h로 80바퀴 정도를 도는 경주다. 이때 길가의 주택 발코니는 요금을 지불한 관람석이 된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이동식 관람석을 동원한다. 나라 전체가 스포츠로 옷을 갈아입는 놀라운 순간인 것이다.
<드리븐>에 등장하는 CART(Championship Auto Racing Teams) 월드 시리즈는 F1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20번의 레이스를 통해 한명의 챔피언을 선정하는 자동차 경주대회. 챔프인 보(틸 슈바이거)는 5연승을 기록하며 우승권에 다가온 루키 지미(킵 파듀)와 경쟁이 부담스럽다. 여자친구 소피아(에스텔라 워렌)마저 버리고 훈련에 매진하는 보와 슬럼프에 빠져가는 지미. 이들의 곁에 왕년의 스타였던-실제의 그처럼- 조(실베스타 스텔론)가 끼어 들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레니 할린 감독은 <다이하드2>, <클리프행어>, <딥블루씨> 등 긴장을 기반으로한 액션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면 촘촘한 구조의 미로를 헤쳐나가느라 흐릿해지는 논리의 피할길을 설정에 미리 두고 눈요기와 감성으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너무 가벼웠던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너무 메마른 <딥 블루씨>를 흘려보내 다시 전공을 살린 <드리븐>이 새롭지 않은 것은 익숙한 그의 이러한 방식 때문이다.
액션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지함이다. 여기서 말한 진지함이란 철학적 사고의 깊이라기보다 상황에 대한 가볍지 않은 대처정도가 어울리는 말이다. 평단의 십자포화와 영화사의 밖에 존재한 이 돈덩어리들은 관객의 선호를 위해 오직 한 길에 매진한다. 당연히 힘 있거나 승리하는 주인공에 관객을 철저히 동일시시키는 것이 성공의 가늠쇠가 된다. 예고편의 화려함이 개봉당일까지 마케팅의 재료가 된다면, 동일시를 가능케하는 설득력 있는 진지함은 타겟을 뚫는 총알이 된다.
조는 한물간 레이서. 복귀한 순간에도 그는 비열한 레이스의 과거로 인해 보에게 철저히 무시당한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가 옥죄는 두려움으로 경주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드리븐>의 약점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의 과거를 뭉뚱그려 상처정도로 놓았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돕는 지미에게 조그마한 첫 트로피를 건네면서 하던 진지한 대사가, 사랑의 상처에 빠진 보에게 건넨 도전의 메시지가 힘이 빠진 건 당연하다. 굳이 선악구분을 두어 승리의 감격을 누리게 하던 전작의 액션물보다 한걸음 나간 건 사실이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진지함보다는 끊임없이 감정을 조장하는 음악과 쉴새 없는 편집으로 다시 뒷걸음 친다.
@쪼개기
‘9억의 관람객, 400km의 속도, 20번의 레이스, 한명의 챔피언’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 오프닝은 짧은 시간에 신예 지미와 정상에 있는 보의 경쟁관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첫 레이스에서 레니할린은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다. 엔진음과 지축과 시선을 흔드는 강한 진동,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불행한 충돌까지 경주의 핵심이 첫 레이스에 잘게 섞여 있다. 평균 지속시간 2초 정도의 컷들은 스포츠 중계처럼, 사이사이 짧은 치마와 가슴을 집어넣고 관객의 환호와 캐스터의 말소리를 섞어 긴박한 경주의 순간을 자동차 위를 덮은 광고만큼이나 선정적으로 담아낸다.
하나만 살펴보자. 1위로 달리는 보의 차를 추월하는 지미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추월할지 모른다는 상황을 캐스터가 설명한다. 사령탑의 요구조건이 마이크로폰을 통해 지미의 헬맷안으로 전달된다. 지미의 시선은 속도와 진동으로 좁은 상태로 흔들리고, 운전대의 속도계가 손과 함께 클로즈업된다. 동시에 두 대의 차가 간발의 간격만 둔 채로 달리고 있다. 지미의 차가 좌우를 교란하다 추월을 시작하면, 카메라는 차의 앞부분을 좌우 번갈아 담고, 지미의 얼굴, 운전대 추월 순간의 자동차 투샷을 지나, 지미 그리고 사령부의 환호가 이어진다. 이 씬은 1,2위의 여부에 집중되는 순위 스포츠의 관람 초점처럼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레이스에 비슷하게는 여러 차례 거의 유사하게 두 차례 재생된다.
<드리븐>이 갖는 전형성의 토대는 비중 있는 배역과 각본을 겸비한 실베스타 스탤론에 있다. 그는 연기에 집중하려던 몇 번의 시도가 어눌한 대사처리와 변하지 않는 눈빛연기로 인해 무산되자 본심으로 돌아왔다. 어눌한 대사처리에 과거 포르노 배우였던 흔적을 지우고, 고스란히 자신을 담은 <록키> 시나리오는 그에게 명예와 부를 약속했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드리븐>의 구조는 <록키>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다. 풋내기의 시련과 성공, 멋진 라이벌과 선배의 도움 등으로 흐르는 플롯은 <록키>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도살된 소의 살덩이를 치던 록키의 맹렬함이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지나 변한 육신 속에 퇴행한 정신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차라리 매력은 돈과 성공을 밝히는 매니저 형과 순수에 가까운 레이서 동생의 관계, 내유외강이 딱 맞아 떨어지는 챔프 보, 성공에 목매지만 휠체어를 벗어나 운전석을 꿈꾸는 칼(버트 레이놀즈), 낙천주의 메모 같은 개릭터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무뇌아에 가까운 두 여성 소피아와 캐시(지나 거손)는 캐릭터의 손을 들어줄 수만도 없게 하는 치명타이다. 극을 이끄는 것은 CART의 챔피언 결정이라는 사건보다 인물들의 심리 상태인 것에 비춰볼 때 균형 맞지 않는 이들의 배치는 감독이 잘게 쪼개 놓은 화면처럼 목숨과 명예를 건 레이스의 두터운 바퀴는 헛돌게 만든다.
@안에선 어떤 일이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 놓은 환상을 통해 기대를 만족으로 전환시키지만, 끊임 없이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전해오는 실제에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미당 미학이 진정한 아름다움에서 멀리 있다 말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처연한 아름다움을 인정할 순 있지만, 그가 피어있는 시궁창 곁의 코 찌르는 냄새와 함께 향기를 맡고 싶진 않는 것이다. 미와 환상은 어느 정도 거리가 주어졌을 때 시력과 사고력의 한계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만족에 이른다.
<드리븐>에 등장하는 레이서들의 내면은 중심으로 올수록 표면적이고, 변두리로 갈수록 직접적이다. 도라지꽃처럼 주연들의 내면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뛰어난 능력으로 환상에 머물게 하고, 실제 현역 스타들을 스치고 가게 한 방식에서 엿보이듯이 단역 레이서들의 긴장은 사실에 근접한다. <드리븐>은 자동차 경주라는 액션을 깔고 인물들의 대결의 장을 마련해 놓은 판타지물이라는 말이다. 이는 파티에서 동등한 소피아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자, 폭주하는 지미의 도심질주 씨퀀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보에게서 상처를 받고 지미를 만난 후, 하룻밤 만에 상대를 바꾼 소피아는 그녀가 떠날 때 두고 왔던 반지를 보에게서 건네 받음과 동시에 지미를 버린다. 그러자 지미는 진열해 놓은 경주용차 올라타 번잡한 마음만큼 도심을 질주한다. 이어지는 씬들의 면면은 예고편에서 빠짐없이 소개된 바와 같이 <7년만의 외출>을 비꼬고 연인의 배경을 깨어 놓고 인쇄매체를 날리고 경찰을 희롱한다. 역주행은 예사이고 트레일러의 밑을 주파하고 맨홀 뚜껑을 날리면서도 손끝하나 다치지 않을 만큼 주인공의 운전솜씨는 환상에 가깝다. 하지만 뒤를 잇는 씬에서 감동적인 조의 연설중 한마디 ‘Use your brain’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이 판타지의 약점이기도 하다.
특히 지미는 자신이 딛고 있는 바탕이 칼이 선택한 레이싱팀의 일원이라는 요소 밖에 없음은 주목할만하다. 혈혈단신으로 등장해 정의와 사랑 명예를 위해 지미의 경우 소피아와 짧은 사랑을 금방 정리한다. 형이 돈과 명예를 노려 떠날 때도 방관하던, 그는 자신이 우승해야 할 아무런 당위도 설정하지 않고-심지어 죽을 만큼 강한 승부욕조차도 없이- 도심질주처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승부욕도 보다 동료애를 앞세우기도 한다 스탤론이 새로 정립한 21세기의 영웅상은 사랑보다 우정 결국은 명예로 정착한다는 공식을 만든 듯하다. 80년대를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십년 동안 꾸준히 잃어간 자신의 명성에 대한 집착처럼 말이다.
<드리븐>에서 가장 멋진 장면들은 자동차의 전복 및 폭발씬이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모든 삐걱임이 사라지는 정화에 이른다. 이어지는 씬들이 새로운 단계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레니 할린의 힘은 폭발하는 비행기 무너지는 눈 산 등의 폭발력에 숨어 있다.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기 16 : 22)
드리븐 (01. 6.14)
-몬다는 것과 몰린다는 것의 차이
@힘의 경쟁
모나코는 인구 3만2000명에 면적이 겨우 1.95㎢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소국이다. 카지노와 그레이스 캘리로 잘 알려진 이 나라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다름아닌 F1(Formula one)이다. 인접한 깐느가 축제를 마친 것에 멀지 않은 얼마 후면, 스멀스멀 밀려드는 F1의 열기는 이 도시국가를 순식간에 변모시킨다. 나라의 거의 모든 도로를 이은 3.328km의 레이스.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얽힌 2차선의 도로를 22명의 레이서가 평균시속 110km/h로 80바퀴 정도를 도는 경주다. 이때 길가의 주택 발코니는 요금을 지불한 관람석이 된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이동식 관람석을 동원한다. 나라 전체가 스포츠로 옷을 갈아입는 놀라운 순간인 것이다.
<드리븐>에 등장하는 CART(Championship Auto Racing Teams) 월드 시리즈는 F1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20번의 레이스를 통해 한명의 챔피언을 선정하는 자동차 경주대회. 챔프인 보(틸 슈바이거)는 5연승을 기록하며 우승권에 다가온 루키 지미(킵 파듀)와 경쟁이 부담스럽다. 여자친구 소피아(에스텔라 워렌)마저 버리고 훈련에 매진하는 보와 슬럼프에 빠져가는 지미. 이들의 곁에 왕년의 스타였던-실제의 그처럼- 조(실베스타 스텔론)가 끼어 들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레니 할린 감독은 <다이하드2>, <클리프행어>, <딥블루씨> 등 긴장을 기반으로한 액션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면 촘촘한 구조의 미로를 헤쳐나가느라 흐릿해지는 논리의 피할길을 설정에 미리 두고 눈요기와 감성으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너무 가벼웠던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너무 메마른 <딥 블루씨>를 흘려보내 다시 전공을 살린 <드리븐>이 새롭지 않은 것은 익숙한 그의 이러한 방식 때문이다.
액션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지함이다. 여기서 말한 진지함이란 철학적 사고의 깊이라기보다 상황에 대한 가볍지 않은 대처정도가 어울리는 말이다. 평단의 십자포화와 영화사의 밖에 존재한 이 돈덩어리들은 관객의 선호를 위해 오직 한 길에 매진한다. 당연히 힘 있거나 승리하는 주인공에 관객을 철저히 동일시시키는 것이 성공의 가늠쇠가 된다. 예고편의 화려함이 개봉당일까지 마케팅의 재료가 된다면, 동일시를 가능케하는 설득력 있는 진지함은 타겟을 뚫는 총알이 된다.
조는 한물간 레이서. 복귀한 순간에도 그는 비열한 레이스의 과거로 인해 보에게 철저히 무시당한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가 옥죄는 두려움으로 경주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드리븐>의 약점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의 과거를 뭉뚱그려 상처정도로 놓았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돕는 지미에게 조그마한 첫 트로피를 건네면서 하던 진지한 대사가, 사랑의 상처에 빠진 보에게 건넨 도전의 메시지가 힘이 빠진 건 당연하다. 굳이 선악구분을 두어 승리의 감격을 누리게 하던 전작의 액션물보다 한걸음 나간 건 사실이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진지함보다는 끊임없이 감정을 조장하는 음악과 쉴새 없는 편집으로 다시 뒷걸음 친다.
@쪼개기
‘9억의 관람객, 400km의 속도, 20번의 레이스, 한명의 챔피언’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 오프닝은 짧은 시간에 신예 지미와 정상에 있는 보의 경쟁관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첫 레이스에서 레니할린은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다. 엔진음과 지축과 시선을 흔드는 강한 진동,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불행한 충돌까지 경주의 핵심이 첫 레이스에 잘게 섞여 있다. 평균 지속시간 2초 정도의 컷들은 스포츠 중계처럼, 사이사이 짧은 치마와 가슴을 집어넣고 관객의 환호와 캐스터의 말소리를 섞어 긴박한 경주의 순간을 자동차 위를 덮은 광고만큼이나 선정적으로 담아낸다.
하나만 살펴보자. 1위로 달리는 보의 차를 추월하는 지미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추월할지 모른다는 상황을 캐스터가 설명한다. 사령탑의 요구조건이 마이크로폰을 통해 지미의 헬맷안으로 전달된다. 지미의 시선은 속도와 진동으로 좁은 상태로 흔들리고, 운전대의 속도계가 손과 함께 클로즈업된다. 동시에 두 대의 차가 간발의 간격만 둔 채로 달리고 있다. 지미의 차가 좌우를 교란하다 추월을 시작하면, 카메라는 차의 앞부분을 좌우 번갈아 담고, 지미의 얼굴, 운전대 추월 순간의 자동차 투샷을 지나, 지미 그리고 사령부의 환호가 이어진다. 이 씬은 1,2위의 여부에 집중되는 순위 스포츠의 관람 초점처럼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레이스에 비슷하게는 여러 차례 거의 유사하게 두 차례 재생된다.
<드리븐>이 갖는 전형성의 토대는 비중 있는 배역과 각본을 겸비한 실베스타 스탤론에 있다. 그는 연기에 집중하려던 몇 번의 시도가 어눌한 대사처리와 변하지 않는 눈빛연기로 인해 무산되자 본심으로 돌아왔다. 어눌한 대사처리에 과거 포르노 배우였던 흔적을 지우고, 고스란히 자신을 담은 <록키> 시나리오는 그에게 명예와 부를 약속했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드리븐>의 구조는 <록키>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다. 풋내기의 시련과 성공, 멋진 라이벌과 선배의 도움 등으로 흐르는 플롯은 <록키>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도살된 소의 살덩이를 치던 록키의 맹렬함이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지나 변한 육신 속에 퇴행한 정신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차라리 매력은 돈과 성공을 밝히는 매니저 형과 순수에 가까운 레이서 동생의 관계, 내유외강이 딱 맞아 떨어지는 챔프 보, 성공에 목매지만 휠체어를 벗어나 운전석을 꿈꾸는 칼(버트 레이놀즈), 낙천주의 메모 같은 개릭터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무뇌아에 가까운 두 여성 소피아와 캐시(지나 거손)는 캐릭터의 손을 들어줄 수만도 없게 하는 치명타이다. 극을 이끄는 것은 CART의 챔피언 결정이라는 사건보다 인물들의 심리 상태인 것에 비춰볼 때 균형 맞지 않는 이들의 배치는 감독이 잘게 쪼개 놓은 화면처럼 목숨과 명예를 건 레이스의 두터운 바퀴는 헛돌게 만든다.
@안에선 어떤 일이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 놓은 환상을 통해 기대를 만족으로 전환시키지만, 끊임 없이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전해오는 실제에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미당 미학이 진정한 아름다움에서 멀리 있다 말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처연한 아름다움을 인정할 순 있지만, 그가 피어있는 시궁창 곁의 코 찌르는 냄새와 함께 향기를 맡고 싶진 않는 것이다. 미와 환상은 어느 정도 거리가 주어졌을 때 시력과 사고력의 한계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만족에 이른다.
<드리븐>에 등장하는 레이서들의 내면은 중심으로 올수록 표면적이고, 변두리로 갈수록 직접적이다. 도라지꽃처럼 주연들의 내면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뛰어난 능력으로 환상에 머물게 하고, 실제 현역 스타들을 스치고 가게 한 방식에서 엿보이듯이 단역 레이서들의 긴장은 사실에 근접한다. <드리븐>은 자동차 경주라는 액션을 깔고 인물들의 대결의 장을 마련해 놓은 판타지물이라는 말이다. 이는 파티에서 동등한 소피아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자, 폭주하는 지미의 도심질주 씨퀀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보에게서 상처를 받고 지미를 만난 후, 하룻밤 만에 상대를 바꾼 소피아는 그녀가 떠날 때 두고 왔던 반지를 보에게서 건네 받음과 동시에 지미를 버린다. 그러자 지미는 진열해 놓은 경주용차 올라타 번잡한 마음만큼 도심을 질주한다. 이어지는 씬들의 면면은 예고편에서 빠짐없이 소개된 바와 같이 <7년만의 외출>을 비꼬고 연인의 배경을 깨어 놓고 인쇄매체를 날리고 경찰을 희롱한다. 역주행은 예사이고 트레일러의 밑을 주파하고 맨홀 뚜껑을 날리면서도 손끝하나 다치지 않을 만큼 주인공의 운전솜씨는 환상에 가깝다. 하지만 뒤를 잇는 씬에서 감동적인 조의 연설중 한마디 ‘Use your brain’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이 판타지의 약점이기도 하다.
특히 지미는 자신이 딛고 있는 바탕이 칼이 선택한 레이싱팀의 일원이라는 요소 밖에 없음은 주목할만하다. 혈혈단신으로 등장해 정의와 사랑 명예를 위해 지미의 경우 소피아와 짧은 사랑을 금방 정리한다. 형이 돈과 명예를 노려 떠날 때도 방관하던, 그는 자신이 우승해야 할 아무런 당위도 설정하지 않고-심지어 죽을 만큼 강한 승부욕조차도 없이- 도심질주처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승부욕도 보다 동료애를 앞세우기도 한다 스탤론이 새로 정립한 21세기의 영웅상은 사랑보다 우정 결국은 명예로 정착한다는 공식을 만든 듯하다. 80년대를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십년 동안 꾸준히 잃어간 자신의 명성에 대한 집착처럼 말이다.
<드리븐>에서 가장 멋진 장면들은 자동차의 전복 및 폭발씬이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모든 삐걱임이 사라지는 정화에 이른다. 이어지는 씬들이 새로운 단계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레니 할린의 힘은 폭발하는 비행기 무너지는 눈 산 등의 폭발력에 숨어 있다.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기 16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