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불어판)

<옹박> 몸으로 보여주는 볼거리의 절대치

열혈연구 2004. 5. 11. 19:02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

-몸으로 보여주는 볼거리의 절대치

 

 이곳, 파리에서 제가 <옹박>을 본 것은 지난 4월 7일이었습니다. 포스터에 쓰여진 카피는 아마 또 다른 동양의 용이 온다! 정도 되었을 겁니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첫 날(이곳은 수요일에 새 영화가 개봉합니다) 그것도 늦은 밤 <옹박>을 보러갔습니다. 극장 안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하는 것처럼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동네 껄렁거리는 젋은 녀석들이 모두 극장에 집합한 것 같았다는 거죠. 영화가 시작하자 분위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주인공의 멋진 발차기가 나올 때마다 함성이 터지고, 상대를 무찌르면 박수가 터져나왔죠. 마치 스포츠 중계를 볼 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제게 결코 유쾌한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식의 반응을 하는 것은 50년 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환호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해 단계를 통해 나오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그들은 결코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느끼는 동일시에 빠져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비아냥에 가까운 함성들을 (우리가 조카들의 장난을 보면서 지르는 과장된 잘한다 소리처럼) 지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은 주인공의 액션이 아닌 다른 장면에서 드러났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에는 태국의 시골 모습이 잠깐씩 나옵니다. 옹박의 실종이 마을의 재난을 불러왔다는, 조금 과장된 시골 사람들의 불안한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특히 한 빼빼 마른 할머니는 이들의 대표처럼 정말 불쌍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곳 젊은 녀석들은 그 할머니가 등장할 때마다 박장대소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방콕으로 떠나는 팅에게 쥐어주는 장면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발을 동동구르며 소리치고 웃습니다.(물론 그런 장면들이 웃음의 여지를 담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웃기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 지낼 때 저 역시 그랬듯이, 우리의 실체는 첨단을 달리고 있다 여김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은 아직도 반세기는 뒤쳐져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좋은 영화가 세계에 널리 개봉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 대표 액션영화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타이가 할 수 있는,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장르가 바로 무에타이 영화이다. 자국 안에 충만한 수천만의 무에타이 인구가 영화의 소재가 되고, 주인공과 스턴트 맨이 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기틀이 된다. 여기에 세계인들의 가슴을 자극할 1%만을 추가한다면 타이 액션영화는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개봉된 몇 안 되는 타이 영화 중 하나인 <옹박>은 무에타이로 이루어진 몸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영화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날렵한 몸놀림으로 표현된다. 마치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처럼 <옹박>은 끊임없는 1 대 1 대결을 선호한다. 단 한 명의 주인공 앞에 차례로 나오는 다양한 모습의 상대는 대결의 단순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도구에 가깝다. 상대에 따라 변화하는 주인공의 절도 있는 안무가 더도 덜도 아닌 이 영화의 핵심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한 마을의 수호상인 불상 옹박의 머리가 도난당하자 주인공 팅이 갖은 고생 끝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내용의 액션영화에는 만만치 않은 무게가 담겨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두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옹박>이 담고 있는 무게, 그 첫 번째는 태국의 자랑인 무에타이이다. 대한무에타이협회 사무국장인 김광열씨에 의하면 무에타이의 보다 정확한 발음은 무워이 타이라고 한다. 싸움을 뜻하는 무워이자유를 뜻하는 나라이름인 타이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하지만 본 글에서는 익숙한 발음인 무에타이를 계속 사용하기로 한다) 즉 타이의 국기인 무에타이는 자유를 위한 싸움에 다름 아니다. 무에타이는 실제로 수많은 태국 젊은이들에게 열려있는 성공의 문이다. 그들은 무에타이를 통해 가난의 굴레를 벗고 명예와 명성을 획득하는 자유의 열쇠를 꿈꾼다.

 

 주인공 팅이 사용하는 공격 부위는 무에타이의 주요 기술들과 일치하는 무릎과 팔꿈치이다. 그는 거의 두 가지 부위만으로 모든 적들을 물리치는데 이는 무에타이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팅이 지하에 형성된 비밀 링에서 붙는 비겁한 적들은 다름아닌 서양인이다. 물리적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서양에 대해 날렵하고 정확한 팅의 무에타이는 언제나 승리한다.

 

 둘째는 자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다. 흥행을 지향하는 상업 액션영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옹박>은 타이의 어두운 면에 가깝게 다가간다. 비밀링과 도박, 마약 등 무에타이로 다져진 깨끗한 육체의 이면에 자리한 소재들을 극의 중심에 집어 넣음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냈다. 특히 내러티브의 모티브인 불상도난 사건은 역사 깊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심각한 문제일꺼라 추측된다.(최근 개봉된 인종차별주의자 장 자끄 아노의 <두 형제(Deux Frères)>에서도 유사한 소재가 등장한다. 거대한 서양 미술관들의 수많은 유산들이 과거 이러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국의 문화제의 도난과 해외 유출에 대한 염려가 오락영화로만 보이는 <옹박>에 담겨있는 셈이다.

 

 영화는 대단한 스펙타클을 보여준다. 툭툭의 추격신은 2, 3km의 특설 도로를 건설해 찍었다던 <매트릭스 2>나 <터미네이터 3> 등과는 사뭇 다른 신선함을 담고 있다. 세 바퀴를 가지고 불안하게 질주하는 수십대의 툭툭은 자본이 스펙타클의 한계가 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과장되지 않은 검은 연기 가득한 진짜 폭발과 그래픽 인간이나 피아노줄 없이 설계한 스턴트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 숱한 영화에서 써먹었고 성룡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시장 질주씬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CF 같은 깔끔함을 선물한다.

 

 이 모든 액션을 가능하게 한 것은 타이의 자랑인 무에타이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벽에 부딪히고 몽둥이에 맞고 공중에서 떨어지고 창문을 뚫어가면서 몸으로 연기가 아닌 스턴트를 한다. 서양에서는 극히 드문, 전문 스턴트맨들만 할 수 있을 법한 고난도의 스턴트를 배우들 전체가 직접하는 것이다. 그것도 실수가 여실히 드러날 수 있는 카메라의 클로즈업과 슬로 모션 앞에서 말이다.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 어색한 세트와 소품, 단역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들은 모든 연기자들이 몸으로 부딪히며 싸울 때마다 하나 둘씩 꺾이며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주인공의 깔끔한 무릎찍기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9 :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