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리멤버 타이탄] 화합과 대결, 한 겹의 차이
열혈연구
2001. 4. 20. 03:20
리멤버 타이탄(2001. 4. 14)
-화합과 대결, 한 겹의 차이
최근 일년사이 미식축구 영화가 줄이어 개봉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미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미식축구의 세계화를 꿈꾸는 건지, <그들만의 리그> <리플레이스먼트> <애니기븐선데이>에 이어 보아즈 아킨의 <리멤버 타이탄>까지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논쟁 감독, 올리버 스톤이 만든 <애니 기븐 선데이>는 비즈니스의 치열함이 승부의 짜릿함을 압도하는 영화다. 주인공 팀인 ‘죠스’의 수비코치 정도 되는 이가 푸념하듯 감독(알 파치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교 코치가 되고 싶다.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때는 1971년 흑백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버지니아주. 통합교육정책에 따라 흑백공학이 된 T.C. 윌리엄스고교는 흑인과 백인으로 나뉘어 있던 다른 두 고교미식축구팀을 하나로 합친다. 그곳에 감독으로 부임한 허먼 분(덴젤 워싱턴)은 전형적인 승부사 유형의 흑인이다. 지역에서 인정 받던 백인고교팀의 감독 빌 요스트(윌 패튼). 그는 허먼의 등장으로 인해 수비 코치로 강등되고 만다.
<리멤버 타이탄>은 간만에 찾아온 학원 스포츠 영화다. 흔히 학원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곳에는 멋진 선생님과 문제 학생들이 있고 모두의 승리가 있다. 또 소재를 스포츠로 삼은 영화답게 각종 대결 구조가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반에 깔려 있는 무거운 대립 구조는 흑백문제다. 먼저 배경이 되는 1970년 버지니아주에 인종구분의 분위기를 구성하고, 새로 부임한 흑인 감독과 백인 코치의 갈등에다 흑백 통합팀을 이룬 ‘타이탄스’ 선수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영화의 기간을 이루는 이 대립구조는 승부를 위한 재료로 고스란히 쓰여진다. <리멤버 타이탄>은 적어도 ‘척’하는 영화는 아니다.
한쪽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세상과 상관없다는 듯 구호에 맞춰 운동에 열심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한번도 현실과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 않다. 고래(古來)로 스포츠는 국력의 상징이기도 정책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국가가 한두시간짜리 승부에서 과학적인 선수 양성 능력을 뽐내거나, 세상을 잊는 동일시와 해소의 장을 통해 우민(愚民)을 기대하는 모양을 수없이 봤다. 멀리 21세기까지 달려왔어도 생사를 걸었던 스포츠의 광기는 여전히 흥분을 불러 일으키는 촉진제다. 양궁이나 사격, 육상, 수영 같은 단순 순위경기가 돈벌이로 쓰이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관중은 짧은 시간에 순위가 아닌 승패. 갱신이 아닌 승리를 얻는 보다 강한 만족의 강도를 택하는 것이다.
통합팀의 감독을 맡은 허먼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하나는 서로 미워하는 흑백 학생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 방향이 다른 코치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거기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험악한 동네 분위기와 흑인 감독의 부임을 반대하는 학교위원회의 ‘한번이라도 진다면 감독직을 사임하게 한다’는 결정이 그의 목을 조른다.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가장으로서 허먼의 분투기는 시작한다.
태생적으로 미식축구는 ‘클로즈 업(Close Up)’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포츠다. 프로텍터로 온몸을 헬멧으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터라 진한 땀방울이나 근육의 꿈틀거림 터지는 핏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관중들은 멀리 보이는 양팀간의 영토전쟁을 ‘극원경(Extreme Long Shot)으로 바라볼 뿐이다. <리멤버 타이탄>은 관람이라기 보다는 시청, 연출된 기교의 무대라기 보다는 순진한 투지의 표현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우직하리만치 정직한 연출을 선보인다. 흑백 갈등으로 조성한 분위기완 달리 정작 미식축구 경기 안으로 들어가면 담백한 화면이 펼쳐진다. 감독은 감정의 고저를 조절하기 위해 스포츠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고속촬영이나 교차편집은 뒷전으로 밀어 놓는다. 공동체 의식을(team spirit)을 외치는 함성소리와 둔탁하게 부딪히는 충돌음이 멋진 묘기하나 없이 기본에 충실히 뛰기만 하는 선수들 위에 덮이는 식이다.
허먼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한다. 캠프를 통해 팀 내에 자리한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예선에서 순조로운 승리를 이어나간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영웅의 행동을 통해 갈등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우린 이런 전형성을 ‘헐리우드식’이라 부른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언제나 적절한 갈등과 명확한 해결을 내세운다. 그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면 정점까지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자막으로 소개하는 형태를 고수한다. 당연히 ‘헐리우드식’ 영화인 <리멤버 타이탄>에는 노골적인 화합의 유도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포츠의 솔직함을 고스란히 옮긴 연출은 의도적인 감정자극 요소들-음악, 조명, 앵글 등-을 남용하진 않는다. 또한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의 입김이 느껴지는 유연한 플롯 배열은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는 만든 이들의 코끝에 맺힌 땀방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머리에 담긴 지식의 두께로 좌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떠한 영화던 간에 수많은 스텝들이 들인 노력은 카메라가 닿고 닿지 않는 모든 장소를 뛰어다니는 순간부터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모두어도 사업가 돈의 양과 비례하진 않는다. 예술과 상업의 구별은 다름아닌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관객에게 지적 여유 혹은 강박을 허락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시도하는 연출자의 의도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 있어서도 비슷한 창조적 사고의 시간을 제공하는지의 차이라는 것이다.
<리멤버 타이탄>은 상업영화다. 또 여기엔 흑백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루어 승리를 낳는 다민족 국가 미국의 자기과시가 충만하다. 관객은 영화가 제공하는 내러티브를 쫓아 승리의 순간에 중계방송을 보는 것처럼 환호하고 인물들의 비극에 안타까워하면 된다. 여기에서 강한 지도자상에 겹쳐지는-덴젤 워싱턴이 연기하기도 했던- 말콤X의 그림자를 찾거나,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우열을 회상하는 식의 사고는 자막이 오르며 인물들이 사라진 후 노력해야 가까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그래서 당시 그들에겐 절대적이었던 ‘타이탄스’의 승패를 까맣게 잊어도 좋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싸움을 아니 가슴에 남아 있는 투쟁의 흔적은 잊어선 안 된다. 기억하라 삶의 전장을…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시편 20 : 8)
-화합과 대결, 한 겹의 차이
최근 일년사이 미식축구 영화가 줄이어 개봉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미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미식축구의 세계화를 꿈꾸는 건지, <그들만의 리그> <리플레이스먼트> <애니기븐선데이>에 이어 보아즈 아킨의 <리멤버 타이탄>까지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논쟁 감독, 올리버 스톤이 만든 <애니 기븐 선데이>는 비즈니스의 치열함이 승부의 짜릿함을 압도하는 영화다. 주인공 팀인 ‘죠스’의 수비코치 정도 되는 이가 푸념하듯 감독(알 파치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교 코치가 되고 싶다.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때는 1971년 흑백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버지니아주. 통합교육정책에 따라 흑백공학이 된 T.C. 윌리엄스고교는 흑인과 백인으로 나뉘어 있던 다른 두 고교미식축구팀을 하나로 합친다. 그곳에 감독으로 부임한 허먼 분(덴젤 워싱턴)은 전형적인 승부사 유형의 흑인이다. 지역에서 인정 받던 백인고교팀의 감독 빌 요스트(윌 패튼). 그는 허먼의 등장으로 인해 수비 코치로 강등되고 만다.
<리멤버 타이탄>은 간만에 찾아온 학원 스포츠 영화다. 흔히 학원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곳에는 멋진 선생님과 문제 학생들이 있고 모두의 승리가 있다. 또 소재를 스포츠로 삼은 영화답게 각종 대결 구조가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반에 깔려 있는 무거운 대립 구조는 흑백문제다. 먼저 배경이 되는 1970년 버지니아주에 인종구분의 분위기를 구성하고, 새로 부임한 흑인 감독과 백인 코치의 갈등에다 흑백 통합팀을 이룬 ‘타이탄스’ 선수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영화의 기간을 이루는 이 대립구조는 승부를 위한 재료로 고스란히 쓰여진다. <리멤버 타이탄>은 적어도 ‘척’하는 영화는 아니다.
한쪽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세상과 상관없다는 듯 구호에 맞춰 운동에 열심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한번도 현실과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 않다. 고래(古來)로 스포츠는 국력의 상징이기도 정책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국가가 한두시간짜리 승부에서 과학적인 선수 양성 능력을 뽐내거나, 세상을 잊는 동일시와 해소의 장을 통해 우민(愚民)을 기대하는 모양을 수없이 봤다. 멀리 21세기까지 달려왔어도 생사를 걸었던 스포츠의 광기는 여전히 흥분을 불러 일으키는 촉진제다. 양궁이나 사격, 육상, 수영 같은 단순 순위경기가 돈벌이로 쓰이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관중은 짧은 시간에 순위가 아닌 승패. 갱신이 아닌 승리를 얻는 보다 강한 만족의 강도를 택하는 것이다.
통합팀의 감독을 맡은 허먼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하나는 서로 미워하는 흑백 학생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 방향이 다른 코치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거기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험악한 동네 분위기와 흑인 감독의 부임을 반대하는 학교위원회의 ‘한번이라도 진다면 감독직을 사임하게 한다’는 결정이 그의 목을 조른다.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가장으로서 허먼의 분투기는 시작한다.
태생적으로 미식축구는 ‘클로즈 업(Close Up)’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포츠다. 프로텍터로 온몸을 헬멧으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터라 진한 땀방울이나 근육의 꿈틀거림 터지는 핏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관중들은 멀리 보이는 양팀간의 영토전쟁을 ‘극원경(Extreme Long Shot)으로 바라볼 뿐이다. <리멤버 타이탄>은 관람이라기 보다는 시청, 연출된 기교의 무대라기 보다는 순진한 투지의 표현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우직하리만치 정직한 연출을 선보인다. 흑백 갈등으로 조성한 분위기완 달리 정작 미식축구 경기 안으로 들어가면 담백한 화면이 펼쳐진다. 감독은 감정의 고저를 조절하기 위해 스포츠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고속촬영이나 교차편집은 뒷전으로 밀어 놓는다. 공동체 의식을(team spirit)을 외치는 함성소리와 둔탁하게 부딪히는 충돌음이 멋진 묘기하나 없이 기본에 충실히 뛰기만 하는 선수들 위에 덮이는 식이다.
허먼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한다. 캠프를 통해 팀 내에 자리한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예선에서 순조로운 승리를 이어나간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영웅의 행동을 통해 갈등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우린 이런 전형성을 ‘헐리우드식’이라 부른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언제나 적절한 갈등과 명확한 해결을 내세운다. 그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면 정점까지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자막으로 소개하는 형태를 고수한다. 당연히 ‘헐리우드식’ 영화인 <리멤버 타이탄>에는 노골적인 화합의 유도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포츠의 솔직함을 고스란히 옮긴 연출은 의도적인 감정자극 요소들-음악, 조명, 앵글 등-을 남용하진 않는다. 또한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의 입김이 느껴지는 유연한 플롯 배열은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는 만든 이들의 코끝에 맺힌 땀방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머리에 담긴 지식의 두께로 좌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떠한 영화던 간에 수많은 스텝들이 들인 노력은 카메라가 닿고 닿지 않는 모든 장소를 뛰어다니는 순간부터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모두어도 사업가 돈의 양과 비례하진 않는다. 예술과 상업의 구별은 다름아닌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관객에게 지적 여유 혹은 강박을 허락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시도하는 연출자의 의도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 있어서도 비슷한 창조적 사고의 시간을 제공하는지의 차이라는 것이다.
<리멤버 타이탄>은 상업영화다. 또 여기엔 흑백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루어 승리를 낳는 다민족 국가 미국의 자기과시가 충만하다. 관객은 영화가 제공하는 내러티브를 쫓아 승리의 순간에 중계방송을 보는 것처럼 환호하고 인물들의 비극에 안타까워하면 된다. 여기에서 강한 지도자상에 겹쳐지는-덴젤 워싱턴이 연기하기도 했던- 말콤X의 그림자를 찾거나,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우열을 회상하는 식의 사고는 자막이 오르며 인물들이 사라진 후 노력해야 가까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그래서 당시 그들에겐 절대적이었던 ‘타이탄스’의 승패를 까맣게 잊어도 좋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싸움을 아니 가슴에 남아 있는 투쟁의 흔적은 잊어선 안 된다. 기억하라 삶의 전장을…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시편 20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