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빌리 엘리어트] 발 끝에 솟은 슬픔을 꺾어라
열혈연구
2001. 2. 28. 03:35
빌리 엘리어트 (2001.02. 20)
-발 끝에 솟은 슬픔을 꺾어라
@비극과 희극 사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는 ‘백조의 호수’는 이제 세상의 모든 발레단 기본 레퍼토리에 자리할 만큼 단단히 서있다. 하지만 그 끝은 윌킨슨(줄리 월터스)부인의 말처럼 비극적이지 않다. 발레를 가르치는 그녀의 말이 정말 틀렸던 것일까?
소년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빌)는 아버지, 재키(게리 루이스)와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의 반대를 무릎 쓰고 발레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있다. 발레에 첫 발을 딛게 했던 윌킨슨 부인은 빌리가 왕립 발레학교에 가길 종용하고 있지만 현실은 답답할 뿐. 차를 몰고 멀리 나가던 바지선 위에서 둘은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백조의 호수’ 이야기를 나눈다.
지크프리트 왕자는 악마, 로트바르트에 의해 밤에만 사람으로 돌아오는 백조가 된 공주, 오데트를 호수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법을 풀어 낼 수 있는 순수한 사랑에 접근하는 둘의 사이를 가르려 로트바르트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오데트는 인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슬픔에 빠져 오데트와 백조들이 호수로 돌아온 때 로트바르트의 음모를 뒤늦게 알아챈 지크프리트가 찾아 온다. 왕자는 칼로 로트바르트를 쓰러뜨리지만 영원히 맺어 질 수 없는 운명을 괴로워하며 오데트와 함께 호수에 몸을 던진다.
여기까지가 와킨슨 부인이 말한 ‘백조의 호수’ 내용이다. 이야기를 들은 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빌리의 왕립 발레학교 입학준비는 오디션 당일 형 토니가 시위도중 경찰에 잡혀간 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다. 아무리 도약을 해도 집요하게 밑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처럼 현실에 발을 뗄 수 없었던 것. 그 모습을 함께 짚어 보자.
빨래들 사이를 달려 도망치던 토니는 얼굴을 덮친 하얀 천 때문에 경찰들 앞에 넘어지고 만다. 휘두르는 진압봉 아래 빨갛게 피가 묻어나는 하얀 천. 이를 발레 연습 후 돌아오던 빌리는 내려다 본다.
1. 집 : 윌킨슨 부인에게 ‘오디션에 못 가게 되었다.”는 전화를 하지만 친구인 부인의 딸이 그냥 끊는다.
2. 길 : 오디션에 응하지 않은 빌리를 찾으러 온 윌킨슨 부인. 구치소에서 풀려 나와 돌아오는 세 부자와 마주친다.
3. 집 안 : 빌리의 재능과 안타까움을 말하는 윌킨슨. 형편과 현실 그리고 남자가 할만한 것은 발레가 아님을 토로하는 형과 아버지. 탁자 위에 올려진 채 병에게 발레를 요구 당하는 빌리의 모습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들고 찍는 시점쇼트(Hand Held Point of View Shot)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소년의 의지와 상관 없이 광기와 대립만 존재하는 어른들의 모습. 이렇게 현실은 답답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에 의하면 ‘백조의 호수’의 원판 대본은 둘이 호수에 빠져 죽는 비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공연되는 대부분의 ‘백조의 호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지크프리트와 오데트는 자신들의 운명에 비관한 채 호수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둘의 굳은 사랑 앞에 로트바르트의 마법은 풀리고 오데트와 백조들은 모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현실의 아이러니
시대착오적 불평등 과세, 종두세로 급속히 몰락한 철의 여인 대처. 그녀가 이끈 80년대 영국은 빈곤과 부요의 긴박한 대치 상태였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인 탄광지역, 더럼 역시 광부들의 노조가 탄광을 점차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바로 대처의 노동시장 개혁에 따른 탄광촌 폐쇄 정책. 연일 빌리의 동네에는 전투 경찰들이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채 광부들로 이뤄진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광부들의 분풀이 대상은 마주선 경찰들이 아닌 노동자. 시위대들은 오늘도 생계의 짐을 진 채 탄광행 버스에 올라탄 동료들에게 ‘비겁자’를 소리치며 계란을 던진다.
앞서 말한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 이야길 좀 더 하자. 비록 후세의 연출가들이 ‘백조의 호수’를 해피엔드로 각색했을지라도 차이코프스키의 운명은 ‘우수(憂愁)의 작곡가’라고 불렸던 것처럼 비극적이었다. 1893년 11월 6일 새벽 3시에 그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공연 작품이었던 교향곡 제6번 ‘비창’의 초연이 있은 지 겨우 6일 만이었다.
발레의 꿈을 접은 채, 빌리의 겨울은 어머니의 유품, 피아노를 해머로 내려치는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다. 피아노는 다음 장면에 벽난로의 장작으로 변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서로 힘없이 외치는 고깔 쓴 엘리어트 가(家). 밖으로 나온 빌리는 게이인 친구, 마이클의 고백을 듣는다. “네가 안 떠나길 바랬어.” 둘은 체육관으로 달려가고 술에 취해 돌아오던 아버지, 재키는 빌리의 춤을 본다.
교향곡 제6번 ‘비창’이라는 표제는 바로 동생 모데스트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형, 차이코프스키를 찾아간 날은 ‘비창’의 초연 다음날. 차이코프스키는 출판사 사장 유르겐슨에게서 요구 받은 출판할 때 붙일 표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둘의 침묵을 깬 건 모데스트. “비극적이 어떤가요?” 별로 내켜하지 않은 차이코프스키에게 다시 한번 “그렇다면 ‘비창’은 어때요?” 단순히 한 작품의 이름이 만들어진 이 에피소드는 차이코프스키의 죽음과 어우러진 현실과 만나 이상한 기운을 낳는다.
빌리를 본 재키는 아들의 발레를 허락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날 그는 탄광촌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매번 시위대 앞에 섰던 그가 오늘은 시위대의 달걀세례를 받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이 모습을 아들 토니가 발견한다. 담장을 넘어 아버지를 불러 세우는 토니. 빌리의 오디션 자금 2천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재키의 말을 들으며 ‘여기서 꺾이면 안 된다’며 부자는 부등켜 안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자신이 비난해 마지않던 ‘비겁자’의 자리에서 무기력증에 일년 넘게 빠져 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의 유품을 팔아치우는 재키. 현실은 진행보다 결심이 힘든 곤란함의 연속이다.
‘비창’의 초연은 지금의 레닌그라드, 페데스부르크에서 거행되었지만 지금의 유명세와 딴판으로 평판은 좋지 않았다. 특이한 약식과 절망적인 음색에 청중들은 냉담했다. 초연이 있은 지 5일째 날. 동네의 한 식당에 나타난 차이코프스키는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마신 냉수 한잔. 콜레라가 러시아에 창궐했던 시기 자살과 다를 바 없던 행동. 결국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게 한 콜레라에 걸리고 만다. ‘비창’에 담긴 비극적인 감성은 차이코프스키 죽음의 예언시(豫言詩)가(家) 되었고 이는 명예의 전당으로 향한다. ‘백조의 호수’ 역시 초연 후 17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된 인정을 받았을 뿐이다. 우리는 현재(現在)에 살고 있지만 현실(現實)을 현시(賢示)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슬픔은
동네는 언제나 시위로 떠들썩 하다. 치매 기운이 있는 할머니는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신다. 자신의 레코드를 몰래 틀었다고 성을 내고 아버지는 오늘도 권투도장 창밖에서 상대의 주먹에 맞아 떨어지는 빌리를 보며 한숨을 쉰다.
빌리의 가족은 파업과 시위중인 탄광촌이라는 거대한 기계속에 제대로 밖혀있는 톱니와 같다. 하나만 뽑혀도 기능을 잃어버리는 기계속 톱니 그 톱니 바퀴가 돌고 있는 기름은 바로 좌절과 상실이다. 빌리는 오늘도 권투도장 앞에서 마이클과 이야길 한다. “난 재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못이기는 척 뛰어들어간 링 위의 빌리는 팔짝 팔짝 뛰다가 한방에 쓰러지는 재능일 뿐이다. 형 토니는 해드폰 속에 흘러나오는 록음악에 발걸렐ㄹ 기타삼아 흔들어대지만 아침이면 시위대의 선도에서 기껏 손가락질이나 하고 비겁한 놈들의 가슴에 칼을 끊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펄펄 끓는 핏덩이다. 아버지 재키는 갑자기 떠난 아내와 맛물려 직장의 파업에 들어간 광부로 날개가 꺾여 있다. 할머니는 ‘직업 무용수가 될뻔했다.’지만 이제 경 자리보전이 전부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영국의 ‘상실’은 여전히 같은 이름의 여왕이 지배하지만 한나절이면 해가 져버리는 자신의 현재에 기인한다. 제국주의의 선부에 섰던 그들은 자심들이 시작한 ‘자본주의의 시발점’ 산어벽명의 부조리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침몰했다. 19세기 빅토리와 여왕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정점으로 둔 채 현대 자본주의 문화에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낳지만 번번히 미국에게 빼앗기는 전성기 그들은 아직도 비틀즈를 그리워 하고 있나보다.
이미 우리는 마크 허만의 <브레스트 오프>나 피터 카타네모의 <풀 몬티>를 통해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한 상황. 즉 문닫는 철강회사와 고아산을 경험해 왔다. 무너지는 기존 산업하의 사람들. 둘의 뉘앙스를 연결하다보면 비록 90년대의 거죽을 입혔지만 80년대 철의 여인과 그녀의 폐광 추진이 떠오르고 그 뒤에 놓인 음악들이 전면으로 부상한다.
<빌리 엘리어트>에 담긴 록 음악들은 시대적 배경인 84년을 십년 이상 거슬러 빌리와 토니를 열광케 하는 특수함은 과거가 여전히 현재에 손을 뻗치고 있음을 보인다. 또 이에 짜맞춘 편집은 앞서 말한 대조법과 더불어 MTV식 뮤직비디오에 식상한 혼잡한 눈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 때론 솔직하게 그것도 아주 솔직하게
‘한 소년의 성공기’를 다룬 <빌리 엘리어트>의 본심은 두 장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재키는 동료들을 찾아가 빌리의 합격을 소리친다. 침울한 그들의 반응은 “우리가 졌다.” 히비를 정확하게 대립시켜 놓은 이러한 편집은 뒤이은 입학하기위해 떠나는 빌리의 이별씬과 탄광으로 내려 들어가는 재키와 토니의 엘리베이터 씬과 맛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우리에겐 기쁨과 슬픔의 접점이 있음을 알리듯이 말이다.
두번째 장면은 ‘백조의 호수’ 지크프리트 왕자가 된 빌리의 공연을 보러 온 15년 후 극장. 어렵사리 런던의 극장에 찾아온 재키와 토니는 흑인 남자 애인과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이클과 만난다. 발레라는 장르가 품은 거세된 남성성을 빌리의 억제 된 분신이었던 마이클과 빌리의 가족이 재회함과 동시에 무대 뒤에 서 있는 빌리의 귀에 스탭이 말한다. “가족들이 왔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품고 있는 감정의 근원-가족애 성공신화-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멋지게 부상한 몇몇씬과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인해 그 약점을 감추고 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그의 출신인 연극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뻔한 샷-리버스 샷으로 초반부의 감정 전달을 통일한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모든 이들의 무뚝뚝함’에 대한 설명이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는 어린 소년 빌리의 연기와 에이젠 슈타인에 기대고 있다.
연극을 통해 사고를 시작했던 에이젠쉬타인은 1923년 ‘레프’에 쓴 친화의 개념을 살펴보자.
“친화는 모든 공격적인 순간이다. 즉 관객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이나 활기를 띠게하는 모든 요소-검증될 수 있고 전체적으로 올바른 순서에 의해 특정한 정서적 충격을 산출해 내기 위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모든 요소-이며 최종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결론을 인지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친화는 결국 ‘임의적으로 선택’되어 특정한 주제효과를 확립시키는 ‘친화의 몽타쥬’를 이룬다.
에이젠슈타인은 친절하게도 스티븐에게 연극을 기반으로 했던 ‘친화의 몽타쥬’에 대한 조언도 덧붙이고 있다. “연극은 연극의 환상과 그것의 묘사를 사실적인 것의 몽따쥬로 바꾸어야 하는 동시에 주제에 있어서 플롯의 발전과 결합된 묘사를 위한 몽따쥬 절편들로 꾸며야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강요적이고 결정적이어선ㄴ 안되며 전체작품에 기여해야하고 적극적인 친화로서 순수한 효과가 선택되어야 한다.”
‘연극’을 ‘영화’로만 바꾼다면 <빌리 엘리어트?에 담긴 세번의 슬로우 모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초반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빌리의 모습은 침대 위하는 현실과 무늬의 반복으로 된 벽지의 공간감을 확대해 발생하는 환상이 느린 동작과 아울러 춤과 표현의 시작을 마직막 씬으로 등장하는 지ㅡ프리트 왕자인 빌리의 비상은 표현과 절정의 감격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다. 또 중반부에 덜컥거렷던 와킨슨 부인에게 맞은 빌리는 매맞는 순간의 어색함을 통해 이 영화 특유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적으로는 어색한 씬이 ‘전체 작품에 기여’하는 특이한 경우를 우리는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처녀작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에베소서 4 : 8)
-발 끝에 솟은 슬픔을 꺾어라
@비극과 희극 사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는 ‘백조의 호수’는 이제 세상의 모든 발레단 기본 레퍼토리에 자리할 만큼 단단히 서있다. 하지만 그 끝은 윌킨슨(줄리 월터스)부인의 말처럼 비극적이지 않다. 발레를 가르치는 그녀의 말이 정말 틀렸던 것일까?
소년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빌)는 아버지, 재키(게리 루이스)와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의 반대를 무릎 쓰고 발레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있다. 발레에 첫 발을 딛게 했던 윌킨슨 부인은 빌리가 왕립 발레학교에 가길 종용하고 있지만 현실은 답답할 뿐. 차를 몰고 멀리 나가던 바지선 위에서 둘은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백조의 호수’ 이야기를 나눈다.
지크프리트 왕자는 악마, 로트바르트에 의해 밤에만 사람으로 돌아오는 백조가 된 공주, 오데트를 호수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법을 풀어 낼 수 있는 순수한 사랑에 접근하는 둘의 사이를 가르려 로트바르트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오데트는 인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슬픔에 빠져 오데트와 백조들이 호수로 돌아온 때 로트바르트의 음모를 뒤늦게 알아챈 지크프리트가 찾아 온다. 왕자는 칼로 로트바르트를 쓰러뜨리지만 영원히 맺어 질 수 없는 운명을 괴로워하며 오데트와 함께 호수에 몸을 던진다.
여기까지가 와킨슨 부인이 말한 ‘백조의 호수’ 내용이다. 이야기를 들은 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빌리의 왕립 발레학교 입학준비는 오디션 당일 형 토니가 시위도중 경찰에 잡혀간 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다. 아무리 도약을 해도 집요하게 밑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처럼 현실에 발을 뗄 수 없었던 것. 그 모습을 함께 짚어 보자.
빨래들 사이를 달려 도망치던 토니는 얼굴을 덮친 하얀 천 때문에 경찰들 앞에 넘어지고 만다. 휘두르는 진압봉 아래 빨갛게 피가 묻어나는 하얀 천. 이를 발레 연습 후 돌아오던 빌리는 내려다 본다.
1. 집 : 윌킨슨 부인에게 ‘오디션에 못 가게 되었다.”는 전화를 하지만 친구인 부인의 딸이 그냥 끊는다.
2. 길 : 오디션에 응하지 않은 빌리를 찾으러 온 윌킨슨 부인. 구치소에서 풀려 나와 돌아오는 세 부자와 마주친다.
3. 집 안 : 빌리의 재능과 안타까움을 말하는 윌킨슨. 형편과 현실 그리고 남자가 할만한 것은 발레가 아님을 토로하는 형과 아버지. 탁자 위에 올려진 채 병에게 발레를 요구 당하는 빌리의 모습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들고 찍는 시점쇼트(Hand Held Point of View Shot)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소년의 의지와 상관 없이 광기와 대립만 존재하는 어른들의 모습. 이렇게 현실은 답답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에 의하면 ‘백조의 호수’의 원판 대본은 둘이 호수에 빠져 죽는 비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공연되는 대부분의 ‘백조의 호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지크프리트와 오데트는 자신들의 운명에 비관한 채 호수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둘의 굳은 사랑 앞에 로트바르트의 마법은 풀리고 오데트와 백조들은 모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현실의 아이러니
시대착오적 불평등 과세, 종두세로 급속히 몰락한 철의 여인 대처. 그녀가 이끈 80년대 영국은 빈곤과 부요의 긴박한 대치 상태였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인 탄광지역, 더럼 역시 광부들의 노조가 탄광을 점차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바로 대처의 노동시장 개혁에 따른 탄광촌 폐쇄 정책. 연일 빌리의 동네에는 전투 경찰들이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채 광부들로 이뤄진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광부들의 분풀이 대상은 마주선 경찰들이 아닌 노동자. 시위대들은 오늘도 생계의 짐을 진 채 탄광행 버스에 올라탄 동료들에게 ‘비겁자’를 소리치며 계란을 던진다.
앞서 말한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 이야길 좀 더 하자. 비록 후세의 연출가들이 ‘백조의 호수’를 해피엔드로 각색했을지라도 차이코프스키의 운명은 ‘우수(憂愁)의 작곡가’라고 불렸던 것처럼 비극적이었다. 1893년 11월 6일 새벽 3시에 그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공연 작품이었던 교향곡 제6번 ‘비창’의 초연이 있은 지 겨우 6일 만이었다.
발레의 꿈을 접은 채, 빌리의 겨울은 어머니의 유품, 피아노를 해머로 내려치는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다. 피아노는 다음 장면에 벽난로의 장작으로 변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서로 힘없이 외치는 고깔 쓴 엘리어트 가(家). 밖으로 나온 빌리는 게이인 친구, 마이클의 고백을 듣는다. “네가 안 떠나길 바랬어.” 둘은 체육관으로 달려가고 술에 취해 돌아오던 아버지, 재키는 빌리의 춤을 본다.
교향곡 제6번 ‘비창’이라는 표제는 바로 동생 모데스트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형, 차이코프스키를 찾아간 날은 ‘비창’의 초연 다음날. 차이코프스키는 출판사 사장 유르겐슨에게서 요구 받은 출판할 때 붙일 표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둘의 침묵을 깬 건 모데스트. “비극적이 어떤가요?” 별로 내켜하지 않은 차이코프스키에게 다시 한번 “그렇다면 ‘비창’은 어때요?” 단순히 한 작품의 이름이 만들어진 이 에피소드는 차이코프스키의 죽음과 어우러진 현실과 만나 이상한 기운을 낳는다.
빌리를 본 재키는 아들의 발레를 허락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날 그는 탄광촌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매번 시위대 앞에 섰던 그가 오늘은 시위대의 달걀세례를 받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이 모습을 아들 토니가 발견한다. 담장을 넘어 아버지를 불러 세우는 토니. 빌리의 오디션 자금 2천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재키의 말을 들으며 ‘여기서 꺾이면 안 된다’며 부자는 부등켜 안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자신이 비난해 마지않던 ‘비겁자’의 자리에서 무기력증에 일년 넘게 빠져 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의 유품을 팔아치우는 재키. 현실은 진행보다 결심이 힘든 곤란함의 연속이다.
‘비창’의 초연은 지금의 레닌그라드, 페데스부르크에서 거행되었지만 지금의 유명세와 딴판으로 평판은 좋지 않았다. 특이한 약식과 절망적인 음색에 청중들은 냉담했다. 초연이 있은 지 5일째 날. 동네의 한 식당에 나타난 차이코프스키는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마신 냉수 한잔. 콜레라가 러시아에 창궐했던 시기 자살과 다를 바 없던 행동. 결국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게 한 콜레라에 걸리고 만다. ‘비창’에 담긴 비극적인 감성은 차이코프스키 죽음의 예언시(豫言詩)가(家) 되었고 이는 명예의 전당으로 향한다. ‘백조의 호수’ 역시 초연 후 17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된 인정을 받았을 뿐이다. 우리는 현재(現在)에 살고 있지만 현실(現實)을 현시(賢示)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슬픔은
동네는 언제나 시위로 떠들썩 하다. 치매 기운이 있는 할머니는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신다. 자신의 레코드를 몰래 틀었다고 성을 내고 아버지는 오늘도 권투도장 창밖에서 상대의 주먹에 맞아 떨어지는 빌리를 보며 한숨을 쉰다.
빌리의 가족은 파업과 시위중인 탄광촌이라는 거대한 기계속에 제대로 밖혀있는 톱니와 같다. 하나만 뽑혀도 기능을 잃어버리는 기계속 톱니 그 톱니 바퀴가 돌고 있는 기름은 바로 좌절과 상실이다. 빌리는 오늘도 권투도장 앞에서 마이클과 이야길 한다. “난 재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못이기는 척 뛰어들어간 링 위의 빌리는 팔짝 팔짝 뛰다가 한방에 쓰러지는 재능일 뿐이다. 형 토니는 해드폰 속에 흘러나오는 록음악에 발걸렐ㄹ 기타삼아 흔들어대지만 아침이면 시위대의 선도에서 기껏 손가락질이나 하고 비겁한 놈들의 가슴에 칼을 끊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펄펄 끓는 핏덩이다. 아버지 재키는 갑자기 떠난 아내와 맛물려 직장의 파업에 들어간 광부로 날개가 꺾여 있다. 할머니는 ‘직업 무용수가 될뻔했다.’지만 이제 경 자리보전이 전부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영국의 ‘상실’은 여전히 같은 이름의 여왕이 지배하지만 한나절이면 해가 져버리는 자신의 현재에 기인한다. 제국주의의 선부에 섰던 그들은 자심들이 시작한 ‘자본주의의 시발점’ 산어벽명의 부조리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침몰했다. 19세기 빅토리와 여왕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정점으로 둔 채 현대 자본주의 문화에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낳지만 번번히 미국에게 빼앗기는 전성기 그들은 아직도 비틀즈를 그리워 하고 있나보다.
이미 우리는 마크 허만의 <브레스트 오프>나 피터 카타네모의 <풀 몬티>를 통해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한 상황. 즉 문닫는 철강회사와 고아산을 경험해 왔다. 무너지는 기존 산업하의 사람들. 둘의 뉘앙스를 연결하다보면 비록 90년대의 거죽을 입혔지만 80년대 철의 여인과 그녀의 폐광 추진이 떠오르고 그 뒤에 놓인 음악들이 전면으로 부상한다.
<빌리 엘리어트>에 담긴 록 음악들은 시대적 배경인 84년을 십년 이상 거슬러 빌리와 토니를 열광케 하는 특수함은 과거가 여전히 현재에 손을 뻗치고 있음을 보인다. 또 이에 짜맞춘 편집은 앞서 말한 대조법과 더불어 MTV식 뮤직비디오에 식상한 혼잡한 눈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 때론 솔직하게 그것도 아주 솔직하게
‘한 소년의 성공기’를 다룬 <빌리 엘리어트>의 본심은 두 장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재키는 동료들을 찾아가 빌리의 합격을 소리친다. 침울한 그들의 반응은 “우리가 졌다.” 히비를 정확하게 대립시켜 놓은 이러한 편집은 뒤이은 입학하기위해 떠나는 빌리의 이별씬과 탄광으로 내려 들어가는 재키와 토니의 엘리베이터 씬과 맛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우리에겐 기쁨과 슬픔의 접점이 있음을 알리듯이 말이다.
두번째 장면은 ‘백조의 호수’ 지크프리트 왕자가 된 빌리의 공연을 보러 온 15년 후 극장. 어렵사리 런던의 극장에 찾아온 재키와 토니는 흑인 남자 애인과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이클과 만난다. 발레라는 장르가 품은 거세된 남성성을 빌리의 억제 된 분신이었던 마이클과 빌리의 가족이 재회함과 동시에 무대 뒤에 서 있는 빌리의 귀에 스탭이 말한다. “가족들이 왔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품고 있는 감정의 근원-가족애 성공신화-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멋지게 부상한 몇몇씬과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인해 그 약점을 감추고 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그의 출신인 연극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뻔한 샷-리버스 샷으로 초반부의 감정 전달을 통일한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모든 이들의 무뚝뚝함’에 대한 설명이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는 어린 소년 빌리의 연기와 에이젠 슈타인에 기대고 있다.
연극을 통해 사고를 시작했던 에이젠쉬타인은 1923년 ‘레프’에 쓴 친화의 개념을 살펴보자.
“친화는 모든 공격적인 순간이다. 즉 관객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이나 활기를 띠게하는 모든 요소-검증될 수 있고 전체적으로 올바른 순서에 의해 특정한 정서적 충격을 산출해 내기 위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모든 요소-이며 최종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결론을 인지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친화는 결국 ‘임의적으로 선택’되어 특정한 주제효과를 확립시키는 ‘친화의 몽타쥬’를 이룬다.
에이젠슈타인은 친절하게도 스티븐에게 연극을 기반으로 했던 ‘친화의 몽타쥬’에 대한 조언도 덧붙이고 있다. “연극은 연극의 환상과 그것의 묘사를 사실적인 것의 몽따쥬로 바꾸어야 하는 동시에 주제에 있어서 플롯의 발전과 결합된 묘사를 위한 몽따쥬 절편들로 꾸며야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강요적이고 결정적이어선ㄴ 안되며 전체작품에 기여해야하고 적극적인 친화로서 순수한 효과가 선택되어야 한다.”
‘연극’을 ‘영화’로만 바꾼다면 <빌리 엘리어트?에 담긴 세번의 슬로우 모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초반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빌리의 모습은 침대 위하는 현실과 무늬의 반복으로 된 벽지의 공간감을 확대해 발생하는 환상이 느린 동작과 아울러 춤과 표현의 시작을 마직막 씬으로 등장하는 지ㅡ프리트 왕자인 빌리의 비상은 표현과 절정의 감격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다. 또 중반부에 덜컥거렷던 와킨슨 부인에게 맞은 빌리는 매맞는 순간의 어색함을 통해 이 영화 특유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적으로는 어색한 씬이 ‘전체 작품에 기여’하는 특이한 경우를 우리는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처녀작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에베소서 4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