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실미도> 어두운 시절의 흐릿한 기억
열혈연구
2003. 12. 28. 00:32
<실미도>
-어두운 시절의 흐릿한 기억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미도>는 실패한 영화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에 관한 영화다. 1.21사태, 끔찍한 연좌제에 관한 어두운 흔적도 새천년과 월드컵의 신화에 묻혀 사라진 지금. 많은 이들에게 멸공과 조국통일은 경제협력과 금강산 관광보다 썩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기억에서 멀어진 사건을 무덤에서 꺼내놓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중앙정보부장의 결제에서도 밀리고, 끝내 캐미넷에 담긴 채 세월을 묵어간 서류철처럼 새로 쓰는, 그리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역사책에 가깝다.
그러나 <실미도>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실패의 수순은 그리 녹녹치 않다. 영화는 1968년 1월 21일,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침투해 서울의 자하문 터널까지 잠입했던 사건에서 시작한다. 김신조 일당의 침입 장면은 강인찬의 살인미수 장면과 교차편집되며 진행된다. 박정희의 목을 베러 침입한 북측 특공대처럼 인찬은 경찰에 포위된 순간 이미 죽음에 도달했던 것이다. 즉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684부대 소집과 훈련 -> 작전취소 -> 부대정리 명령 -> 서울진입시도로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주민등록 말소라는 공적 사형선고가 무장공비 사살이라는 국가적 사형집행으로 귀결되는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철저한 대결구도로 이루어져있다. 684부대원과 기간병, 인찬과 상필, 조중사와 박중사, 오국장과 최중위 등 끝없이 연결되는 대결구도는 <실미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인찬과 최중위가 맞서는 대장실 신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다. 부대정리 명령에 반한 훈련병들이 기간병들과 교전에 들어가자 인찬은 최중위를 찾아 대장실로 간다. 대장실에 침투한 인찬은 총구를 겨누며 그에게 묻는다. “왜 그랬습니까?” 김일성 사살을 명령해 놓고 왜 철회했으며, 부대정리 사실을 일부러 알게 해 이러한 교전을 종용했냐는 질문이다. 최중위는 국가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군인의 의무를 말한 후 차갑게 내뱉는다. “날 쏘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널 죽일 수 밖에 없다.”
강감독은 인찬과 최중위가 마주하는 이 순간, 죽음을 눈 앞에 둔 둘의 모습을 각각 상반된 클로즈업의 샷 리버스샷으로 표현함으로써 강렬한 대립구도의 비극을 완성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인찬과 모자챙 그늘에 눈을 감춘 대장의 모습은 감정 분출과 억제의 긴박한 시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최중위를 죽이지 못하고 인찬이 몸을 돌릴 때, 찰칵하는 장전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돌아서 향한 인찬의 총구 끝에는 다름아닌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는 최중위가 있다. 방아쇠를 당겨 자살하는 대장. 시종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던 그는 총알이 머리를 뚫는 순간,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두개의 백열전구 앞에 힘없이 초점을 잃은 두 눈을 드러낸다. 북으로 간 아버지로 인해 범죄의 길에 빠진 인찬, 그러한 그를 두고 평생 따뜻한 방에 눕지 않으신 어머니처럼, 엄격한 최중위 역시 자신이 낳은 버림받은 늑대 새끼들을 국가의 명령에 따라 죽이지 못했다. 결국 최중위는 그들과 맺어진 끈으로 죽음에 이르며 연좌제의 어두운 결말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미도>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실패의 흔적, 즉 분단이 빚어낸 비극을 연좌제라는 소재로 연결짓고 대결구도를 통해 이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잊혀진 시대에 상영되고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니. (미가 1 : 8)
-어두운 시절의 흐릿한 기억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미도>는 실패한 영화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에 관한 영화다. 1.21사태, 끔찍한 연좌제에 관한 어두운 흔적도 새천년과 월드컵의 신화에 묻혀 사라진 지금. 많은 이들에게 멸공과 조국통일은 경제협력과 금강산 관광보다 썩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기억에서 멀어진 사건을 무덤에서 꺼내놓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중앙정보부장의 결제에서도 밀리고, 끝내 캐미넷에 담긴 채 세월을 묵어간 서류철처럼 새로 쓰는, 그리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역사책에 가깝다.
그러나 <실미도>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실패의 수순은 그리 녹녹치 않다. 영화는 1968년 1월 21일,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침투해 서울의 자하문 터널까지 잠입했던 사건에서 시작한다. 김신조 일당의 침입 장면은 강인찬의 살인미수 장면과 교차편집되며 진행된다. 박정희의 목을 베러 침입한 북측 특공대처럼 인찬은 경찰에 포위된 순간 이미 죽음에 도달했던 것이다. 즉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684부대 소집과 훈련 -> 작전취소 -> 부대정리 명령 -> 서울진입시도로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주민등록 말소라는 공적 사형선고가 무장공비 사살이라는 국가적 사형집행으로 귀결되는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철저한 대결구도로 이루어져있다. 684부대원과 기간병, 인찬과 상필, 조중사와 박중사, 오국장과 최중위 등 끝없이 연결되는 대결구도는 <실미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인찬과 최중위가 맞서는 대장실 신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다. 부대정리 명령에 반한 훈련병들이 기간병들과 교전에 들어가자 인찬은 최중위를 찾아 대장실로 간다. 대장실에 침투한 인찬은 총구를 겨누며 그에게 묻는다. “왜 그랬습니까?” 김일성 사살을 명령해 놓고 왜 철회했으며, 부대정리 사실을 일부러 알게 해 이러한 교전을 종용했냐는 질문이다. 최중위는 국가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군인의 의무를 말한 후 차갑게 내뱉는다. “날 쏘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널 죽일 수 밖에 없다.”
강감독은 인찬과 최중위가 마주하는 이 순간, 죽음을 눈 앞에 둔 둘의 모습을 각각 상반된 클로즈업의 샷 리버스샷으로 표현함으로써 강렬한 대립구도의 비극을 완성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인찬과 모자챙 그늘에 눈을 감춘 대장의 모습은 감정 분출과 억제의 긴박한 시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최중위를 죽이지 못하고 인찬이 몸을 돌릴 때, 찰칵하는 장전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돌아서 향한 인찬의 총구 끝에는 다름아닌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는 최중위가 있다. 방아쇠를 당겨 자살하는 대장. 시종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던 그는 총알이 머리를 뚫는 순간,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두개의 백열전구 앞에 힘없이 초점을 잃은 두 눈을 드러낸다. 북으로 간 아버지로 인해 범죄의 길에 빠진 인찬, 그러한 그를 두고 평생 따뜻한 방에 눕지 않으신 어머니처럼, 엄격한 최중위 역시 자신이 낳은 버림받은 늑대 새끼들을 국가의 명령에 따라 죽이지 못했다. 결국 최중위는 그들과 맺어진 끈으로 죽음에 이르며 연좌제의 어두운 결말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미도>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실패의 흔적, 즉 분단이 빚어낸 비극을 연좌제라는 소재로 연결짓고 대결구도를 통해 이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잊혀진 시대에 상영되고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니. (미가 1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