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언브레이커블] 과거에 잠식된 현재

열혈연구 2000. 12. 14. 20:35
언브레이커블
-과거에 잠식된 현재



@예언자 : 엘리야

구약성서의 예언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사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인다. 제단 위에 놓인 송아지를 태워 자신의 신에게 제사를 들이는 편이 승리. 단 불을 놓으면 안 된다. 850명의 바알 사제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칼과 창으로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에게 매달렸지만 결국 불을 붙이지 못하고 만다. 어스름한 저녁, 차례가 돌아온 엘리야는 갑자기 주위 도랑에 흥건히 고일 만큼 제단 뒤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언브레이커블>은 온몸의 뼈가 골절되어 태어난 흑인 아기 엘리야로 문을 연다. 짧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가 평생 지닐 신체적 약점으로 인한 짐을 효과적으로 드리우면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이비드 듄(브루스 윌리스)에게로 전환한다. 소원(疏遠)한 부인과 떨어져 직장을 옮길 계획에 그는 새 일자리 면접을 하고 뉴욕서 돌아 오는 길이다.

기차가 몇 번쯤 터널을 지났을까. 옆자리 앉았던 젊은 부인에 추근대기도 하고, 앞자리 꼬마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전작 <식스 센스>의 높은 형체 속에 푹 담겨있는 <언브레이커블>은 역시 초현실적인 능력을 소재로 한다. 아무런 병도 걸리지 않고 어떠한 사고에도 다치지 않는 남자, 데이비드의 힘겨움과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엘리야의 예언이 서로 타협점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구조는 전편과 거의 비슷하다. 어느 순간부터 멀어진 부인과 관계회복은 서브플롯의 주된 과제고, 초능력을 가진 한 사람과 조력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할리 조엘 오스먼드와 비슷하게 우는 아들, 요셉(스펜서 트리트 클라크) 등 인물과 반전을 위한 극중 설명의 반복과 힌트까지 재구성의 진수를 보이고 싶어한다.


하늘에서 내린 불은 번제물(燔祭物)과 쌓아올린 나무와 돌은 물론 주위의 흙을 모두 태우고 도랑의 물을 핥는다.

예언자 엘리야는 성경의 인물 중 에녹과 함께 죽음에 이르지 않은 인물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수레와 불말이 주위를 두를 때, 불어온 회리바람을 타고서 홀연히 제자 엘리사가 보는 가운데 부름 받아 하늘로 올라간다.

부서진 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현실의 엘리야는 희귀본 만화와 원판을 판매하는 갤러리, 'Limited Edition'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 오락으로 묻혀 사라진 것들을 예술로 지위를 높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뽑아내 사람들을 설득하는 직업. 그가 원판그림 한 장을 어린 아들 선물로 사려한 남자에게 팔지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 사람들의 이해도는 엘리야와 방향이 같지 않다. 그가 131명이 죽은 필라델피아 열차사고에서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데이비드를 찾아가 예언을 말한다.
"당신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목동이 왕으로 : 다윗

다윗은 선택받은 사람. 유대의 한 끝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던 그는 볼품 없는 목동이었다. 형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 블레셋의 군대와 싸우고 있을 때도 그는 고작 형들에게 줄 도시락을 나르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사사, 사무엘을 통해 왕의 기름부음을 받고 거인 골리앗을 물멧돌 하나에 쓰러뜨릴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데이비드는 엘리야의 말을 통해 자신이 이제껏 한번도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자각(自覺)은 자신이 이제껏 모르고 있던 사이코메트리(물건 속에 담겨 있는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를 넘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언하는 능력까지 발전한다.

하층 구조를 이루는 데이비드의 가정 문제는 그가 꿈을 접는 데서 감춰진 씨앗을 품고 있다. 대학시절 유명한 풋볼선수였던 데이비드가 풋볼을 관두게 된 것은 차 사고 때문.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는 공식발표는 평범한 삶을 꿈꾸던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한 거짓이었다. 지금 그는 그녀의 바램처럼 '부서지기 쉬운' 운동선수에서 '보호하는' 안전요원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좌절된 꿈, 풋볼 주위에서 위험한 사람을 찾아 안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물리 치료사인 부인이 데이비드의 예언을 확인하려다 다친 엘리야를 치료하는 것과 대치된다. 가려져 있지만 서로의 꿈을 지켜주었던 상대에 대한 이해를 물리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함께 품고 있다. 부인으로 인해 꿈을 접은 그가 악몽을 꾸면서 멀어진 부부관계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바로, 깨어지기 쉬운 엘리야의 예언 속에 있다. 자신의 예언을 찾아낸 데이비드와 모티브를 제공한 엘리야의 관계와 달리 데이비드의 가정은 화해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예언과 이해의 차이.

다윗은 점점 나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울왕의 두통을 치료하려 비파 악사(樂士)가 된다. 그는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왕의 가장 가까운 데까지 올라간다. 그 시간은 길지 않고, 다윗이 차기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음을 안 사울에 쫓겨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통일 유대의 왕에 올려놓는다.

골리앗을 처치한 다윗처럼 데이비드는 죽음을 목전에 둔 아이들을 구출한다. 유일한 죽음의 경험이었던 풀장에 빠진 사건과 같이 물 속에 잠겼을 때는 다윗의 생명을 구한 사울의 아들, 요나단처럼 구원의 손길이 뻗친다. 꿈의 좌절과 해체 위기에 있는 가정 앞에서 고민하던 데이비드는 얼굴 없는 영웅, 초인(超人)만화의 주인공을 자신의 출구로 삼는다. 이를 부추기는 것 역시, 신문이다.


@퍼트리는 힘 : 매체
유럽 상인들의 해외 소식지로 등장한 400년 전 신문에서 갓 서른도 안된 인터넷까지. 매체의 선정성 폭력성은 공익성 책임성과 등을 대고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최근 청소년 폭력영화 <로얄 배틀>에 대한 일본에서 논쟁처럼 영화의 빠른 전파력과 침투력은 매체 영향력의 상승과 함께 증가하고 있다.

골형성부전증환자 엘리야는 어린 시절 작은 충격에도 자꾸만 뼈가 부러지는 등 심하게 다쳐 친구들에게 '유리'라 놀림 받았다. 그가 꺼진 TV 앞에 앉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 시절은 TV가 영화를 누르고 오락매체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던 때. 엘리야는 또래 놀이를 통해 소통하기보단 매체에 의존하려한다.

엘리야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내어놓은 미끼는 집 앞 놀이터 벤치 위의 만화책. 놀이를 매체로 대처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머니가 골라온 초인만화는 엘리야가 세상과 소통하는 첫 번째 길이 된다. 비록 그것이 악당을 통한 것일지라도..

매체효과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회면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의 '어떤 영화를 흉내냈다'는 발언처럼 매체에서 전한 메시지가 수용자에게 발사한 총알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탄환이론(Bullet Effect)'은 매체정책분야 집행인들에게 금언처럼 여겨지고 있다. 사고 능력의 조작만을 인정하는 이런 이론만 겉으로 드러나고, 수용자측의 적극적인 판단을 내세운 제한효과 이론들은 이들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언브레이커블>은 스펙타클에선 철저히 손을 때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큰 장점인 '규모효과'를 무시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겪은 기차전복사고나 호텔화제사건, 비행기폭파사고 등도 화면의 위압감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대신, 모두 TV나 신문의 사후통보 형태를 보인다. 매체의 본분은 자신이 갖고 있는 효과보다 사건전달에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사고를 알아채는 것도 데이비드가 과거를 찾아내는 것도 모두 매체를 통해서다.


소극적인 예방에서 적극적인 구원으로 데이비드는 아들 앞에서 350파운드를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을 발견한 것처럼 만화 속 영웅의 길을 따라가고 매체를 이용해 이를 확인한다. 악몽을 꾼 후로 멀어진 아내와 관계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그가 자신에 대한 눈을 뜨는 곳은 바로 엘리야의 갤러리다. 영웅과 악당의 확연한 선악구조가 의식 없는 그의 삶에 대립구조를 설정한다.


@과거를 기억하라
<언브레이커블>은 초현실적인 능력을 매개로 소통과 음모를 담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기억이 자리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현실의 엘리야를 만들었다면 데이비드는 기억을 확인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식이다. 데이비드는 이상하게도 과거를 잊고 있다. 5살 때 풀장에 빠진 기억도 대학교 때 차사고 기억도. 심지어 몇 년 사이 아팠는지 여부도 모두 잊고 있다.

하나씩 알아 가는 데이비드의 능력과 밝혀질수록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엘리야의 예언이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동경과 화해의 실마리를 던지는 부인의 소원(所願)과 맞닿아 있기를 원했다면 적어도 막판의 반전이 관객과 캐릭터 양자(兩者)를 이룰 수 없는 회복의 절망으로 빠뜨린 <식스 센스>와는 다른 전략을 취했어야 했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언브레이커블>에는 방향과는 다르게 인물들의 숱한 좌절들이 모두 출구를 품고 잇는 확연함을 지닌다. 결말을 예측했거나 이미 알고 들어갔던 소수들에게도 최소한 긴장과 의문을 남겨주었던 <식스 센스>와 바로 이점에서 구분된다. 마지막 반전이 터진 둑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은밀하게 가렸던 비밀들을 그저 그렇게 하나씩 털어놓는다.

엘리야의 정체가 어린 시절 상처와 처음 접한 초인만화를 흉내낸 '작가'였다는 사실도 치밀한 조사보다 예언자적 태도를 일삼던 그의 행동으로 인해 놀랍지 않다. 깨어지기 쉽고 움직이기 힘든 그가 기민한 행동력과 치밀한 조작력을 가졌다는 설정에서 이미 첫 올이 풀린 뜨개옷 꼴인 것이다.

영화는 질감까지 전작과 비슷하다. 백금으로 화려한 원색을 뺀 듯한 차가운 색채는 극을 주도하려 시종 깔리는 상황예측용 음악과 함께 비관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려 애를 쓴다.

겨우 두 편의 영화로 미국상업영화의 정점에 선 샤마란 감독은 자신이 벌여놓은 단서들로 미스터리를 잃어버린 듯 하다. 우리의 기억에 확연한 홈즈나 애거사 등 소설 속의 유명 탐정들은 같은 설정에 비슷한 절차를 거쳐도 매번 독자에게 비밀을 찾는 기쁨을 선물했다.

그의 영화들이 '007 시리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적어도 조금은 더 고심해야 할 것이다. 영화판은 생각만큼 그리 만만치 않다.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靈感)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매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昇天)하더라 (열왕기하 2 : 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