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 월드투어> 극장과 온라인 사이에서
4월 29일 공개(또는 개봉) 예정인 <트롤: 월드 투어>를 둘러싼 논쟁이 (업계 내에서만) 뜨겁다. 유니버설측은 한국 내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를 천명했지만, CGV와 롯데시네마는 상영 거부 결정을 내렸다. 2016년 넷플릭스의 <옥자> 개봉 논쟁의 새로운 버전이다. 이번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한국 내 극장시장 문제에 가까웠던 <옥자>와 달리, 유니버설의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 전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홀드백과 코로나19
한국에서는 거의 무의미해졌지만, 미디어홀드백이라고 부르는 극장개봉영화 방송유예기간(TRW, Theatrical Release Windows)은 미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극장개봉 이후 2차 시장으로 풀리는 기간을 줄이고 싶어하는 스튜디오와 가능한 오랫동안 영화상영 독점권을 유지하길 원하는 극장이 맞서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에서는 개봉 후 3개월 정도면 DVD를 포함한 2차 시장에 영화가 풀린다. <트롤>이 그 기준을 깼다. 최근 유니버설은 <더 헌트>, <인비저블맨>, <엠마> 등 개봉 중인 영화들도 온라인 대여 형태로 공개했다.
비단 유니버설만이 아니다. 빈 디젤 주연의 코믹스 원작 영화 <Bloodshot>은 극장 개봉 열흘 만에 온라인 대여와 구매가 가능해졌다. 소니영화다. 워너의 할리 퀸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도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디즈니도 픽사 애니메이션 <Onward>를 극장 개봉 2주 만에 온라인 공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극장들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현상이다.
온라인시장을 기웃거리는 스튜디오
한편 <트롤: 월드투어>는 온라인 공개 3주 만에 1억 달러 매출을 울렸다. 디지털 대여료의 80%를 챙긴 덕에 유니버설은 이미 전편 보다 큰 수익을 거뒀다. 휴업중인 극장 측의 반발은 거세다. 미국극장주협회 NATO는 이번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미국 최대 극장 체인인 AMC는 “미국, 유럽의 어떤 극장에서도 유니버설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보이콧 선언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한국과 다르다.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들이 온라인 영화시장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유니버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케이블 TV와 방송회사이자, 미국 내 최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 컴캐스트의 계열사다. 워너브라더스는 세계 최대 통신 기업인 AT&T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폭스를 인수한 디즈니는 방송사 외에도 디즈니플러스라는 대형 OTT 플랫폼을 가동했다. 파라마운트 판결 이전처럼 영화시장 전체를 장악하려는 스튜디오들의 발빠른 행보다.
포스트코로나시대의 뉴노멀
코로나19사태로 인한 극장 셧다운을 핑계 삼았을 뿐, 미국에서 영화온오프라인 시장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만 회원으로 인정하는 미국영화협회(MPPA)가 넷플릭스를 품은 게 2019년 이야기다. 그렇다고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가 새로운 기준(New normal)이 될 확률은 낮다. 디즈니의 <뮬란>, <블랙위도우>, 소니의 <007 노 타임 투 다이>, 심지어 유니버설의 <분노의 질주 9>까지 스튜디오들의 대형영화들 대부분은 온라인 공개가 아닌 개봉연기를 선택했다.
<트롤: 월드 투어>를 위시한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 또는 TRW 축소 현상은 대형영화의 개봉이 9월에서 11월 사이에 대거 몰린 상황에서 택한 흥행 자구책에 가깝다고 본다. 이후에도 비슷한 선택은 어린이가 주고객층인 애니메이션이나 관람등급이 높은 중소형 장르영화들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들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 영화들이다. 만약 넷플릭스 대형영화들이 극장으로 향하고, 스튜디오의 중소영화들이 온라인공개를 택한다면, ‘대형영화=극장개봉, 중소형영화=온라인공개’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길 수도 있다.
한국영화산업을 위하여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다르다. CGV와 롯데시네마가 한국식 스튜디오와 한 식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극장 시장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국영화산업 특성상 <트롤>의 온오프라인 동시공개는 미국과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최근 극장개봉에서 넷플릭스 공개로 선회한 <사냥의 시간>에 관한 법원의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극장시장 무게는 미국과 사뭇다르다. 극장이 없으면 영화도 없다. 영화인이 없으면 영화는 없다. 이번 기회에 유명무실화한 방송유예기간 나아가 IpTV, OTT의 영화발전기금 부과 문제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한국영화산업질서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 온오프라인 개봉 문제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독립예술영화(인/관)를 위한 정책 개발과 현실적인 지원을 위한 영발기금 확대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