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소수의견(2013) : 사실이 아니라는데… 사실이 아니길…

열혈연구 2015. 6. 27. 01:34

(이 글에는 영화의 미묘한 비밀들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만 읽으셔야 할 겁니다.)

 

 

2013년에 만들어졌지만, 이제야 개봉한 영화에 대해 막연한 추정을 해본다. CJ가 이 영화에 투자했을 때는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권교체를 바라봤겠지. <두 개의 문>이 개봉해 재조명 받고 있던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상업영화를 내놓으려 했을거다. 그러나 정권은 유지되었다. CJ는 세무조사에 들어가고, 이재현 그룹 회장은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이어 몇몇 프로그램의 폐지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애국심 캠페인이CJ 계열 방송채널과 극장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에는 박 대통령이 극찬한 <국제시장> 배급을 맡았다.

 

형집행정지로 세상에 머물고 있는 이회장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실은 광복절 70주년 특사를 기대하고 있을 테다. 지난 3년간 들인 정성과 기업인이라고 불이익 또는 이익을 줘서는 안된다고 한 황 신임 총리의 소신까지 고려하면, 허황된 꿈은 아니다. 누가 지난 2년 동안 이 영화를 극장에 걸지 않고 팽개쳐 둔 CJ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아버지를 살리려는 아들의 마음을


 

<소수의견>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한 아들은 철거민의 자식이다. 고교생 아들 박신우가 용역 깡패와 경찰들에 맞서 화염병을 제작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아버지는 찾아온 아들을 꾸짖는다. 아버지의 지적에 답하기도 전에 벽에 있는 거울이 깨진다. 불이 타오른다.



 

한 아들은 환하게 인사하는 의경이다. 주물공업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생각해, 김희택은 경찰 시험에 가산점을 준다는 의무경찰에 자원입대했다. 버스에서 라면을 먹고, 용역들이 밀어부친 철거민들을 방패로 막는 게 전부인줄 알았다. 지붕에서 떨어진 화염병이 갑자기 동료의 옷에 불을 붙였다. 흥분한 동료와 함께 건물 안으로 쇄도한다.



 

비극은 두 아버지의 두 아들이 마주치며 발생한다. 경찰과 깡패 그리고 철거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싸움에서 아들을 숨기려는 아버지와 위험한 화염병을 던지며 공권력에 저항하는 불법집회자들을 진압하려 올라온 두 의경이 맞선다. 그리고 급한 무전이 오간다. 의경 김희택이, 고교생 박신우가 머리를 다쳤다. 젊은 목숨을 잃었다.

 

<7번방의 선물>이 법정을 모티브로 삼은 코메디라면, <변호인>은 실화를 담은 바이오픽 법정물이었다. <소수의견>은 허구를 표방한, 본격적인 법정영화다. 심지어 해군내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은폐음모를 밝혀내는 <어 퓨 굿맨>과 이름도 비슷하다. 영화의 주 흐름은 경찰-검찰-청와대로 이어지는 국가권력과 철거민-변호사-기자로 연결되는 저항세력의 충돌이다. 국가권력은 연쇄살인범으로 물타기, 용역깡패를 살인범으로 포장하기, 뒷조사와 증거 인멸 등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달려간다. 저항세력 역시 어둠의 세력들과 정치꾼 그리고 권모술수를 동원해 진실을 규명하려 애쓴다.

 

아쉽게도 영화는 어째서 소수의견이라는 건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가끔 때를 놓치는 쇼트의 연결이나 설정을 잊어버린 연기, 싱크가 맞지 않는 사운드를 목격할 때면 삐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할 때마다 자꾸 재현하는 플래쉬백들과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오는 의미심장한 음악, 속도를 줄이는 액션은 2년 동안 편집을 거듭했나 싶을 정도로 친절하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소수의견>은 양념을 많이 친 소문난 음식 같다. 식욕에 응하는 정답 같기도 하다. 초점맞추기를 활용하는 김동영의 카메라가 대표적이다. 박신우의 아버지와 김희택의 아버지를 전후경에 배치한 법정신의 한 쇼트는 영화로서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내 아들이 죽였다면 아마 사고였을 겁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김희택 아버지가 먼저 보인다. 이어 그가 미안합니다를 덧붙이며 초점을 잃어갈 즈음엔 고개를 숙인 박재호의 모습이 전경에 나타난다. 한 인물은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아버지로, 또 한 사람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로 돌변하는 위치 변화를 초점링의 조절만으로 담아낸 놀라운 순간이다.

 

원작에 시나리오까지 참여한 손아람의 맛깔난 대사는 대단하다. 하지만 그보다 기발한 것은 실화가 아니라고 내세운 영화의 전제(前堤). 외국영화라면 필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라고 떠야할 자막이언제부턴가 한국영화에선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닙니다라고 쓰이고 있다.

 

영화는 허구(fiction)이고, 환영(illusion)이다. 이것은 영화라는 예술을 정의하는 커다란 틀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영화는 사실이 아니며 실재가 아니다. 친절하게 실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를 보며 자꾸만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소수의견>을 흥미로운 영화로 올려 놓았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상업영화를 지향했다. 그런데 저항영화처럼 읽힌다. CJ 2년 동안 배급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일테다. 시네마서비스에 부디 세무조사의 칼날이 비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