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원더풀 라이프> 선택은 오래 지속된다

열혈연구 2002. 1. 24. 16:55
원더풀 라이프
-선택은 오래 지속된다


광화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씨네큐브’ 혹은 ‘아트큐브’라는 접두어가 붙은 ‘광화문’이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이광모 감독의 백두대간에서 운영을 하는 곳이죠. 소식에 의하면 이 극장이 흑자를 냈다더군요. 자신들이 수입해서 거는 영화들은 주로 비할리우드 영화들입니다. 몇 편의 히트작도 내었습니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 <천사들>, <당신의 취향>, <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등... 좌석은 몇 되지 않고, 스크린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가끔 생각이나 가고 싶은 극장입니다. 하이퍼텍 나다를 비롯 지금은 좀 변했지만 동숭 씨네마텍, 코아 아트홀도 그렇습니다.




죽어서 림보에 도착한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라는 숙제를 건네 받습니다. 영원한 저승세계까지 간직할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선택에 대한 영화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우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기억과 추억을 통해 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마땅한 시나리오를 고르는 것에서 적당한 제작자와 감독을 택하고 어울리는 배우를 정하는 등 제작 이전 단계에서도 선택은 수없이 등장합니다. 이 후로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 OK컷과 NG컷을 골라야 하고, 편집에서는 최종 결정본을 뽑아야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선택이 필요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감독의 길이죠.


<원더풀 라이프>는 판타지와 다큐멘터리가 공존하는 특이한 영화입니다. 이승과 저승사이 존재하는 림보라는 공간은 분명 판타지인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큐멘터리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감독인 코레에다 뿐만 아니라 촬영 감독인 야마자키 유카타 역시 다큐멘터리 출신입니다. 감독은 판타지를 다큐멘터리처럼 다루겠다는 선택을 한 듯 합니다. 제작 전 작업에서도 감독은 다큐멘터리적으로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6개월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 다니며 ‘만약 당신이 지금 죽어서 인생을 돌아본다면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겠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합니다. 그 중 몇몇은 이 영화의 배우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만족 혹은 좌절시키며 욕망의 열쇠가 되고자 합니다. 판타지는 영화의 혈액형 중 하나입니다. 다큐멘터리마저 연출자의 선택을 통해 관객의 판타지를 조장한다고 하면 과다할까요. 우리가 하리수의 삶을 궁금해하고 또 다른 가십거리를 만들어낸 시작이 TV 다큐멘터리 였다는 사실을 혹시 기억하는 지요.

기억 또한 판타지에서 멀지 않습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 볼 때면 뽀얗게 즐겁고 대단한 것들로 가득 차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기억이 개인의 생각을 입어가며 다르게 간직 된다는 일반론을 거절합니다. 인생의 모든 장면이 담겨 있는 비디오는 판타지 속에 담긴 리얼리즘의 흔적입니다. 여기에 머물렀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시시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림보의 직원들은 사람들이 고른 기억을 소재로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솜구름으로 만든 구름과 버스 모형을 흔드는 식으로 담아내는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를 완성합니다. 영화는 생생한 과거의 기억을 판타지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며 영원으로 가져갈 보물인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 재생산되는 사람들의 과거는 더 이상 열악한 화질의 비디오가 아니라 제대로 꾸며진 영화가 되는거죠. 사람들이 영원히 간직할 기억은 선택에 의해 단순한 자신의 과거가 아닌 현현(玄玄)을 품은 판타지가 됩니다. 과거를 담은 비디오를 챙겨서 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더풀 라이프>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화려한 여성편력을 지닌 바람둥이 할아버지, 어린이와 같은 지적 능력만 남은 할머니, 생각 없이 사는 새파랗게 젊은 청년 혹은 너무나 평범해 하나를 꼬집어 낼 수 없는 사람까지 천차만별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요구된 것은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영원까지 가져갈 생의 순간을 고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것을 고르실 건가요?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브리서 13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