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크의 사선(국어판)

<반지의 제왕> Saga continue!

열혈연구 2002. 1. 11. 01:18
반지의 제왕
-Saga continue!


<반지의 제왕>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이미 톨킨의 원작을 알고 계신 분들 조차 기대와 아주 멀지 않은 잭슨의 영화에 대체나 만족하는 분위기 입니다. 우리의 판타지 영화도 기다려 집니다. ‘퇴마록’은 이우혁 씨가 직접 들고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구요. 심형래 감독이 ‘드래곤 라자’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을 J.R.R 톨킨의 원작 없이 설명하는 것은 역사학의 무용론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원작과 비교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스크린에 걸리기 시작하기 전부터 숱하게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곁들여 이미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비교까지 적지 않은 수이니 굳이 하나의 장광설을 추가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글은 피터 잭슨의 영화가 보여준 <반지의 제왕>을 쫓아갈 생각이다.

말은 이렇게 했더라도 원작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만 하고 가자. 톨킨이 중간계에 살도록 허락한 호빗과 요정, 드워프와 트롤 등은 이제 당당히 판타지 소설이라는 세계의 시민이 되었다는 점이다. 톨킨이 만든 것은 팬들이 쌓아놓은 찬사들로 이루어진 전설뿐 아니라 이후로도 수없이 늘어날 서사 판타지의 거대한 뿌리 중 하나였다.


@로드 무비
난쟁이 족속 호빗인 프로도에게 반지 하나가 생겼다. 111살임에도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삼촌, 빌보가 책을 쓴다며 급하게 떠나면서 남긴 것이다. 그 반지는 다름아닌 절대반지였다. 프로도는 운명처럼 다가온 절대반지를 악의 존재인 사우론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파괴하는 길을 떠난다. 이를 파괴할 수 있는 곳은 반지가 만들어진 사우론의 본거지, 모드도르의 용암뿐이다. 호빗과 인간 요정과 드워프로 구성된 반지 원정대는 사우론의 세력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모르도르를 향한 기나긴 모험을 시작한다.

주인공인 프로도는 어린이 혹은 젊은이가 주인공을 맡는 판타지 영화의 공식(이에 벗어나는 사례는 늙은 피터팬이 등장해 처절한 실패를 본 <후크>나, 처음엔 젊었지만 점점 늙어가는 <인디아나 죤스> 시리즈 정도다)에 어울릴 만큼 젊은 모습(실제로 그의 나이는 50세인데!)을 하고 있다. 프로도는 희생양을 감수하는 지도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작고 약한 존재. 그런 면에서 파라오의 손에서 유대족속들을 해방시켰던 모세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프로도를 말에 태운 아웬이 나즈굴들을 물로 날려버리는 신은 갈라졌던 홍해의 물벽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이집트의 군사들을 삼키는 성서의 한 장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프로도의 일행은 40년 동안 광야를 헤맸던 모세들처럼 숲을 지나 산을 넘고 지하로 걷고 또 걷는다.

로드무비의 핵심은 길게 늘어선 길이 아니라 인물의 성장이다. 인물들은 인생의 여정처럼 굽이굽이 펼쳐있는 길 위에서 사람과 사건을 거치며 자라난다. 그 길이 끝나는 곳은 허물을 벗는 장소이자 날개를 펼쳐 날아갈 새로운 세상이다. 3부작의 시작인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의 마무리는 로드 무비의 마지막에 놓인 열린 결말과 같다. 델마와 루이스가 자동차를 몰아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부치와 선댄스 키드가 총을 쏘면서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처럼 뻔한 결말을 숨기기 위해 위장된 열림이 아닌, 2단계로 정확히 들어서는 1단계의 엔딩 인 것이다. 샘과 함께 프로도가 강을 건너는 강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이기도 이전의 미숙함을 망각하는 레테일 수도 결국은 다른 세상에 이르는 요단강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2부의 프로도가 1부의 프로도보다 자라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선과 악
다른 면에서 프로도의 운명은 켈트족의 영웅, 아더왕의 전설과 맥락을 같이한다. 마법사 멀린처럼 간달프가 곁에서 돕다가 사라지는 것이나, 원탁의 기사나 반지 원정대 충성의 맹세를 하지만 깨어지고 만다는 점은 물론, 아라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사도 이야기 등 많은 점이 겹쳐진다. 가장 비슷한 것은 절대반지와 엑스칼리버 혹은 성배(聖杯)의 유사성이다. 절대반지와 엑스칼리버는 크게는 절대권력에 이르는 열쇠이면서 작게는 생명을 지키는 호신구이다.

반면 여기서 <반지 전쟁>이 갖는 선악의 모호한 경계가 빛을 발한다. 절대반지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성배처럼 권력과 영생의 유혹에서 멀리 있는 프로도를 선택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의 창조자가 절대악인 사우론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지배할만한 힘에다 스스로도 의지를 가지고 있는 절대반지는 모든 이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다. 그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로 반지를 낀 대상을 맞추려 한다. 악한 용도로 만들어진 반지는 결코 선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는 여정과는 달리 반지 원정대는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떠난다. 절대반지는 인물들의 마음에 숨겨 있는 욕망을 자극해 터트리는 촉매이다.

반지원정대와 맞서 사우론 층에 선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사루만과 나즈굴처럼 변절한 능력자와 오크, 우룩하이, 트롤처럼 조정을 받는 전사들이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전투장면을 제외하고서도 이들의 대결구조가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언제 선에서 악으로 옮겨갈지 모르는 인간의 연약함이다(배신하는 것은 인간 뿐이다). 마법사의 우두머리였던 사루만이나 나즈굴은 탐욕으로 인해 사우론에게 무릎을 꿇었다. 또 보로미르나 빌보, 심지어 엘프의 여왕인 갈라드리엘 조차 반지의 유혹에 빠진다. 선 속에 숨어 있는 악, 그것을 자극하는 절대반지는 누가 적이 될지 모른 긴장감을 원정대의 고된 여정 밑에 깔아 놓는다.

반지 원정대들은 때때로 죽이는 것 앞에서 망설인다.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이들의 자문은 악함이 선함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즉 선과 악은 서로 오갈 수 있는 가역반응인 것이다. 이로 인해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결국 둘을 모두 품고 있는 존재들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우정과 불신이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걸어가게 된다. 원숭이가 만들어낸 좀비나, 마을을 덮친 외계인들이나, 벽을 뚫고 들어오는 유령처럼 잭슨의 영화에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 있을 뿐, 선악의 구분이 자리하지 않는다. 절대악에 맞서 파괴를 향해 나가도록 한 것이 톨킨의 작업이었다면, 연약한 존재가 살아 남기 위해 마냥 뛰어가는 것은 잭슨의 취향이다.


@잭슨의 과제
<반지의 제왕>에서 카메라는 날개 달린 듯 중간계 이곳 저곳을 날아다닌다. 반지원정대가 산에 오르면 산 등성이 위에서 먹이를 노리는 솔개처럼 떠다니고 지하 깊은 나락이 보이면 돌멩이처럼 함께 떨어진다. 카메라의 비행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간달프가 사루만의 성을 벗어나는 신이다. 성의 꼭대기에 갇혀 있는 간달프에게 나방이 한 마리 날아온다. 카메라는 나방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나방의 시점 소트로 멀리 있는 간달프에게 다가간다. 나방이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이고 떠나면 간달프는 성 아래로 뛰어내리고 어디선가 거대한 새가 나타나 그를 태우고 유유히 떠난다.

이 신은 <미녀와 야수>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카메라 워크와 이미 그 기반에서 탄생한 게임의 동영상 화면과 비슷하다(컴퓨터 그래픽과 어울려 멀리서 날아온 카메라가 등장하는 <타이타닉>의 어색함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 특이한 것은 <반지의 제왕>에 쓰인 특수효과가 미니어처를 이용한 매트 쇼트처럼 수작업과 컴퓨터 그래픽이 보란 듯이 혼재한다는 점이다. 중간계의 풍광은 때로는 뉴질랜드의 자연이기도 스튜디오의 사진이기도 한데, 이 차이가 적지 않게 드러난다. 감독은 영화가 딛고 있는 톨킨의 팬들을 의식한 듯 영화가 생각하는 판타지를 발판으로 한, 보여주는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책이 쓰여진 시대에서 멀지 않은 할리우드의 기법과 영화의 개봉에 자극받아 책을 찾아 든 세대에서 땔 수 없는 게임의 양식을 모두 품는 것이다(절대반지에서 악이 다가오면 푸른 빛을 뿜는 스팅,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미스릴, 에아렌딜의 빛이 담긴 수정 유리병 등을 얻어가는 프로도일행의 모험에서 롤 플레잉 게임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반지 원정대는 아르고나스에서 오크들과 만나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아르고나스는 전지전능한 왕들이 거대한 석상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성지이다. 하지만 성지는 과거를 기억하게 할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물신화(物神化)했지만 이제는 거짓신(僞神)이 되어버린 석상의 머리만이 그들이 싸우는 곳곳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다.

피터 잭슨에게 주어진 과제(이미 3부작은 완성이 되었지만)는 전설을 만들었고 10억의 독자에 의해 물신에 이른 톨킨의 그림자를 쫓느냐 혹은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워내느냐 이다. 적어도 그가 콜롬버스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음은 이미 밝혀졌다. 잭슨의 산물을 확인하려면 아직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만들어가며 전설이 되었던 <스타워즈>와도, 자찬과 자기 소비에서 멀지 않은 많은 시리즈 물들과는 다른 곳에 있기를 바란다. 잭슨의 유머 감각이라면 더없이 충분할 듯 하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디모데전서 1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