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caphandre et le papillon> 눈꺼풀로 쓴 이야기
‘Elle’의 편집장이었던 Jean-Dominique Bauby가 쓴 동명의 책이 원작. 칸느 영화제 출품작. 연기, 작곡, 각본, 그림에 걸친 팔방미인 줄리언 슈나벨은 <바스키아>로 데뷔한 감독
감독 : 줄리언 슈나벨
상영시간 : 1시간 52분
개봉일 :
출연 : 마티유 마랄릭, 마리-죠세 크로즈, 엠마뉴엘 세녜르, 장-피에르 카셀 등
하늘에서 땅으로
작년 프랑스 흥행 16위에 오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첨단 의상계의 화려함보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아가씨에 관한 영화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잘 풀어낸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한 의상과 소품들의 행진으로 여성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제목에서 말하는 프라다를 입는다던 그 악마는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이었다. <Le Scaphandre et le papillon>의 주인공 역시 편집장. 44살의 장-도미니크는 ‘Elle’의 잘나가는 편집장이었다. 갑작스런 마비 증세로 눈 하나밖에 깜빡 할 수 없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내와 관계가 소원했던 장-도미니크는 새로 산 자동차에 아들을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때 갑작스레 한쪽 눈꺼풀을 제외한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폐쇄증후군(locked-in syndrome)이 그를 찾아온다. 3주 만에 눈을 뜬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얼마 후 발음교정기술자와 만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방법은 이렇다. 활용순서대로 만들어놓은 알파벳 표를 읽어주면 눈을 깜빡여 해당 철자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E, S, A, R, I, N, T… 순으로 이어지는 표에서 하나씩 꼽아낸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 죽고 싶다 ». 그랬던 그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말 그대로, 눈빛으로 철자 하나 하나를 꼽아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적어낸 책 그것이 영화의 원작이다.
시선의 폭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눈뜬 장-도미니크의 시점쇼트(point subjective: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장면)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눈을 뜬 환자의 시각처럼 초점이 맞았다 나갔다, 감았다 떴다, 이미지가 또렷했다, 흐릿했다를 반복한다. 첫 장면처럼 영화의 대부분은 장-도미니크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독은 이를 시점 쇼트와 상상신 그리고 독백으로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Le Scaphandre et le papillon>의 또 하나 독특한 점은 감독이 다루는 주인공 장-도미니크에 대한 태도다. 감독은 갑작스런 신체적 장애를 당한 사람의 불행을 동정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면서 여자랑 놀아나고, 자식을 아끼면서 아내를 미워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종교를 업신여기던 그의 원래 모습이 폐쇄증후군이 찾아와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클로드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정부에게 « 매일 널 기다려 »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의 말을 해석해서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 아내라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아내에게 미안해 하지 않는 뻔뻔함, 이것이 <Le Scaphandre et le papillon>가 <나의 왼발>, <제 7요일>, <레인맨>, <오아시스>, <마라톤> 등과 구별되는 점이다.
놓쳐서는 안될 사람들
장-클로드는 보비는 책이 출간된 지 얼마 후에 폐렴으로 목숨을 잃는다. 영화 속에서 신부님과 성상을 파는 가게 주인 등 1인 2역을 한 장-피에르 카셀은 지난 4월에 하늘로 떠났다. <Le Scaphandre et le papillon>는 뱅상 카셀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아무리 냉정한 시선을 가졌다 하더라도 <Le Scaphandre et le papillon>는 충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눈꺼풀을 통해 처음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장면,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불편한 아들에게 거는 전화 장면, 그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은 울다가 웃을 수 있는 감동과 재미를 선물한다. 특히 영화제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듯 보인다. 딱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다고 하긴 어렵지만, 마티유 아말릭이 맡은 장-도미니크 역할은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에 오를 만하기 때문이다.